제27회 순천향 창작문예 공모전 수필 부문 가작 「일상이 바람 될 때」
제27회 순천향 창작문예 공모전 수필 부문 가작 「일상이 바람 될 때」
  • 이석민(미디어커뮤니케이션, 17)
  • 승인 2021.02.17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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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이켜 보면 이번 해에는 정말 꿈같은 일들의 연속이었다. 기대도 안 했던 주택청약이 당첨돼서 송도의 43층 신축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고, 항상 불안했던 아버지의 사업이 친척들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로 바빠졌다. 기초생활 지원금을 받던 우리가 1년만에 낮에는 인천앞바다가 훤히 보이고 밤에는 송도의 화려한 야경이 보이는 집에서 소고기를 먹게 되다니! 생각만 해도 뿌듯하고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하지만 이런 행복은 그날 어머니에게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산산조각 나버렸다.

 

"아들... 아빠가... 아빠가 많이 아파..." 느낌이 좋지 않다. 강인하신 어머니가 이렇게 목소리를 떠시다니 "아빠가... 암 말기래..."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호흡은 가빠지고, 심장은 빠르게 요동친다. 아버지를, 아빠를 빨리 만나러 가야 하는데 눈물이 앞을 흐려서 내 지갑을 찾을 수가 없다. 전철을 타러 가야 하는데 다리가 풀려 현관을 나설 수가 없다. 본가로 올라가는 전철에서 나는 신께 바라고 또 바랐다. 이 모든 것들이 꿈이게 해달라고, 1년동안 있었던 일들 모두 없었던 일로 해도 좋으니, 우리 아버지만 살려 달라고.

 

태연하셨다, 담담하셨다. 절망적인 현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숭고하셨다. 병원으로 출발하던 어제 아침까지도 아버지는 눈물 한번 흘리지 않으셨다. 미안하다고,,, 그저 미안하다고 하셨다. 남들처럼 풍족하게 키우고 싶었는데,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우리는 어제 5년 만에 거창한 스튜디오가 아닌 좁디 좁은 거실에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내가 아빠에게 바랐던 마지막 소원이었다. 사진 속에 우리는 절망적인 현실은 까맣게 잊은 듯이 환하게 웃고 있다. 마치 언젠가 다시 이러한 일상이 돌아올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처럼.

 

나는 의사가 아니고, 신도 아니다, 슬프게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람이다. 아버지가 암을 이겨내게 해달라고, 우리 가족이 이 힘든 현실을 잘 이겨내게 해달라고 바랄 뿐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오셨을 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어있도록,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나의 할 일을 할 것이다. 대학을 계속 다니고 공부를 할 것이다. 담도 암 말기는 생존율이 10%도 안 된다는 현실, 아직 갚아야 할 대출이 2억이 넘는다는 것, 어머니의 건강 또한 나빠지고 있다는 현실. 지금도, 수많은 절망적인 현실들이 나를 향해 흉측한 아구를 벌리고 무섭게 쫓아온다. 하지만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시간이 없다. 태연하게, 담담하게, 그리고 숭고하게,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하루 하루를 살아 나가야만 한다.

 

나에게 가장 소중했던 건 43층의 아파트나, 여유로운 형편이 아니었다. 1년에 한 번씩 아버지와 함께 경주하듯 산을 오르던 날들, 밤새 그림을 그리는 형 때문에 자주 모일 수 없던 우리 가족의 단란한 저녁 식사, 명절마다 서로를 위해 울며 기도를 하던 가족 예배, 늦게까지 놀고 귀가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날아오는 아버지의 잔소리 같은 평범한 일상이었다. 간혹, 화려한 것에 가려져 그것들이 남루해 보일 때가 있다. 내가 이번에 느낀 것은 내 손에 쥐고 있다고, 그것이 영원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방심하는 순간 그것들은 한줌 바람 되어 우리의 손을 빠져나간다.     

 

지금의 일상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이라는 나의 낙관은 후회로 바뀌고, 그 일상들은 간절한 바람으로 바뀐다. ‘소중한 것들은 잃고 난 후에야 그 가치를 깨닫게 된다.’ 가장 진부한 말인 동시에 지금 내 심장을 가장 아프게 쑤시는 말이다. 솔직히,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고 해도 완벽한 아들이 될 자신은 없다. 하지만, 그저 즐겼으면 좋겠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다시는 지금 같은 일상이 돌아오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을 것처럼 즐겼으면 좋겠다. 행복은 찾는 것이 아니라 음미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우리의 일상은 바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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