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지는 자살률 속 무감각해지는 사회

2025-11-29     김유빈

매년 반복되는 익숙한 뉴스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약 28.3명으로, 최근 10여 년 사이 가장 높은 수준이자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여전히 OECD 평균(약 11명)의 두 배를 훌쩍 넘는 수치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통계가 발표될 때마다, 사회가 점점 덜 놀란다는 것이다.

자살률이 높다는 사실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해마다 발표되는 수치는 잠시의 관심을 끌지만, 금세 잊혀진다. 언론은 짧게 보도하고, 우리는 ‘안타깝다’는 말로 그 소식을 덮는다. 죽음의 수가 늘어도 사회의 반응은 점점 무뎌지고 있다. 그러나 이 숫자는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다. 그 안에는 누군가의 친구이자, 가족이며, 동료였던 사람들의 이름이 담겨 있다.

늘어나는

 

청년층의 상황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20대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22.2명, 30대는 26.4명으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KIHASA)이 2023년 발표한 연구 「같지만 다른 그들, 청년: 성별 자살생각과 자살시도 영향요인의 탐색」에 따르면, 만 20세에서 39세 청년 1,012명 중 42.1%가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5.6%는 최근 1년 내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여성 청년의 자살 생각 비율(47.5%)은 남성(37.2%)보다 높게 나타났다. 경제적 어려움과 불안정한 일자리, 사회적 고립이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이 수치는 청년이 힘들다는 막연한 말이 아니라, 세대 전체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무관심은 또 하나의 폭력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심각한 사회문제이고, 이것이 해결되어야 할 1차적인 과제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숫자에 우리가 점점 덜 놀라고 있다는 점이다.

매년 같은 시기에 통계가 발표되고, 우리는 한동안 슬퍼하다가 곧 잊는다. 그러나 누군가의 삶은 그 짧은 기사 속에서 사라지고, 이름 없는 숫자로만 남는다. 우리가 더 이상 놀라지 않는다면, 그건 사회가 이미 병들었다는 신호다. 누군가의 고통이 데이터로만 존재하는 사회에서, 생명은 점점 더 가벼워진다. 매년 발표되는 자살률 통계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아직 놀라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 망설인다면, 우리 역시 무관심에 익숙해진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무감각해지는 이유

우리가 자살률 통계에 무감각해지는 데에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먼저, 언론은 자살 보도를 반복적으로 전달하면서도, 대개 사건 중심, 숫자 중심의 보도에 머문다. 보건복지부의 자살 보도 권고기준이 강화되며 언론이 더 조심스럽게 다루기 시작했지만, 그 결과 깊이 있는 분석이나 사회적 원인 제시가 더욱 부족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개인 책임론’ 역시 영향을 미친다. “멘탈이 약해서 그렇다”,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다”는 식의 시선은 문제를 사회 구조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킨다. 이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KIHASA)의 2022년 보고서에서도 나타난 현상으로, 정신건강 문제를 개인의 성향 문제로 보는 태도가 여전히 강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러한 인식은 결국 우리를 ‘덜 놀라게’ 만든다. 구조적 문제는 보이지 않고, 숫자는 반복되고, 그래서 우리는 익숙해진다.

 

우리가 해야 할 변화

우리가 반복되는 무감각의 흐름을 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개인의 차원에서는 ‘힘들다’는 감정을 숨기거나 평가받을까 두려워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고통을 말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문화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고통의 표현이 ‘약함’으로 해석되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먼저 손을 들기 어렵다.

대학은 구성원들이 서로의 상태를 살피고 말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단순한 상담 제공을 넘어, 학생들이 서로의 정신건강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하고, 생명 감수성을 높이는 교육과 캠페인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상담받으라는 안내보다, 정서적 연대가 자연스럽게 가능해지는 문화가 훨씬 더 큰 힘을 가진다.

사회 전체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언론과 대중문화는 사건 중심 보도에서 벗어나 고통의 원인과 구조를 함께 질문해야 한다. 개인을 탓하는 시선 대신, 각자가 처한 환경을 함께 들여다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결국 필요한 것은 ‘자살률을 낮추는 방법’만이 아니라, ‘고통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를 바꾸는 일이다. 누군가의 위기 앞에서 별일 아니라는 듯 지나치는 사회에서, 어떤 정책도 충분히 효과를 내기 어렵다. 관심과 감수성의 회복이 곧 생명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죽음에 익숙해진 사회다. 생명은 숫자가 아니라 이야기다. 그 이야기가 멈추지 않도록, 우리는 끝까지 귀 기울여야 한다.

 

김유빈 기자 (nunubin@s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