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목소리가 사라진 뉴스룸
AI 아나운서, 누구의 목소리를 대신하는가
“오늘의 뉴스입니다.” 이 익숙한 문장은 이제 사람의 입이 아닌,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목소리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송출 시 우리가 화면으로 보는 AI 아나운서의 모습은 깔끔하고, 오류가 없으며, 심지어 24시간 쉬지 않는다. 이는 음성합성과 얼굴 모션 캡처 같은 신기술이 실제 뉴스 방송에까지 적용되면서, 전통적인 방송 영역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변화다. 실제로 MBN은 김주하 아나운서의 외모와 목소리를 본뜬 AI 아나운서를 선보이며 본격적인 실험에 나섰다.
그러나 이러한 완벽함 속에서 어딘가 불편함이 느껴진다. 목소리는 매끄럽지만 동시에 비어 있는 느낌을 준다. 익숙한데 낯설고, 또렷한데 어딘가 부족하다. 기술이 구현한 이 목소리는 특정한 누군가를 닮았고, 동시에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지우고 있다. 그 사이에서 진짜 목소리는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그 변화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충분히 질문하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양성과 포용성을 위협하는 AI 아나운서
AI 아나운서는 지금, 표준어를 정교하게 구사하며 중립적인 어조로 뉴스를 전한다. 이는 인간 아나운서에게도 요구되는 기본 역량이며, 시청자에게는 익숙하고 안정적인 전달력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표준’은 어떤 사회적 기준에 기반하고 있으며, 기술은 이를 더욱 고착화할 수 있다.
많은 TTS(Text-to-Speech) 기술은 오랜 기간 동안 젊고 부드러운 여성 음색을 기본값으로 설정해왔다. Alexa, 네이버 클로바 등 은 초기 설정에서 여성 음성을 중심으로 설계되었으며, 이는 사용자의 친근감과 순응성을 고려한 결과였다. 한편 Apple은 2021년 iOS 14.5부터 Siri의 기본 음성을 여성으로 설정하지 않고, 사용자에게 선택권을 직접 음성의 성별을 고르게 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는 기술 설계에 내재한 성 역할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을 수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유네스코(UNESCO)의 2019년 보고서 「I’d Blush if I Could」는 이러한 경향이 성 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AI 음성의 성별·어조 선택이 단순한 기술적 설정을 넘어 문화적 영향력을 지닌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비슷한 맥락에서, MIT 미디어랩의 연구는 주요 음성 인식 시스템이 남성 화자에 비해 여성이나 흑인 화자의 발화를 인식하는 데 더 높은 오류율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AI음성이 특정 집단을 기본값으로 삼을 때, 기술은 사회적 편견을 학습하고 재생산할 위험이 있다.
AI 아나운서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지금, 그 목소리가 표준어와 특정 음색, 억양에 집중될 경우, 기술은 다양한 음성을 구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획일화된 모델을 반복하는 구조로 작동할 수 있다.
이는 시청자에게 익숙함을 주지만, 동시에 방송이 지닌 근본 가치 중 하나인 ‘다양성’을 조용히 묻는다. 지역의 억양, 연령대의 차이, 성별의 스펙트럼은 점점 더 선택되지 않으며, 목소리의 범위는 좁아진다.
물론 표준어 구사와 중립적 어조는 아나운서의 핵심 역량이다. 그러나 방송이 공공성과 대표성을 지닌 매체라는 점에서, AI가 구현하는 음성이 특정 기준에만 갇히는 방식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기술은 기존 방송의 포맷을 따르기보다, 포착되지 않았던 다양한 정체성과 목소리를 구현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소외를 재현하지 않도록, 우리는 AI의 기준 설정이 어떤 사회적 함의를 갖는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알고리즘의 편향과 윤리적 그림자
TTS(Text-to-Speech) 기술은 방대한 학습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문제는 그 데이터가 이미 사회적 편향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데이터 자체가 이미 사회적 편향을 포함하고 있으며, AI는 이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특정 목소리나 억양이 ‘더 신뢰받는’ 방식으로 구현되고, 이 기준은 기술을 통해 확산된다.
이로 인해 뉴스 전달자마저 정형화된다. 감정과 맥락, 문화적 해석이 필요한 뉴스는 기계적 음성으로 전달되며, 이는 뉴스의 본질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인간 아나운서의 감성적 직관과 문화적 해석 능력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사라지는 목소리, 그리고 기술이 놓치는 것들
기술은 멈출 수 없는 흐름이며, AI 아나운서의 등장은 그 속에서 탄생한 하나의 혁신이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돌아보는 일 또한 중요하다.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사람의 가치’를 되묻고 지켜야 한다. AI 아나운서는 인간 아나운서를 완전히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다양성과 감성, 포용성을 함께 담아낼 수 있는 보완적 수단이어야 한다.
뉴스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사회적 소통의 방식이며, 그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겨야 한다. AI가 아무리 정확하게 문장을 읽어도, 그 문장이 살아 있는 뉴스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숨결이 필요하다.
방송이 더 완벽해질수록, 방송 속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사람의 숨결’일 수 있다. 그 침묵은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닌, 존재 자체의 지워짐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그 소리를 다시 듣기 위해, 기술이 아닌 사람을 중심에 두는 방향을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