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젠더 갈등, 기름 대신 소화기가 필요할 때
불붙은 젠더 갈등, 기름 대신 소화기가 필요할 때
  • 박미나
  • 승인 2021.05.25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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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젠더 갈등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 지난 5월 1일(토), GS25의 ‘캠핑가자’ 이벤트 포스터가 ‘남성 혐오’ 논란의 대상이 됐다. 같은 이유로 BBQ, 무신사 등의 기업 또한 '남성 혐오' 논란이 제기됐다. 해당 기업들은 의도가 없었음을 밝혔지만 논란을 피해갈 수 없었다. 지난 4월 7일(수)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은 젠더 이슈에 대해 비교적 소극적인 보수야당의 지지를, 20대 여성은 젠더 이슈에 더욱 민감히 대응하는 소수정당 혹은 무소속 후보를 지지를 택했다. 이전 서울과 부산 시장의 성범죄 사실과 그에 대한 여당의 후속 대처 및 태도에 대해서는 20대 남녀 모두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결과는 확연히 다르게 나타났다. 이를 두고 경향신문에서는 20대의 '젠더 선거'라 이름 붙였다. 위에 언급한 이슈들은 젠더 갈등의 심화가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젠더 이슈는 정치권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20대 여성과 남성을 “이대남’과 ‘이대녀’로 프레이밍하고 있으며 여성 징병제, 군 가산점제 부활 등의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대남·이대녀 프레이밍을 통한 담론이 20대가 당면한 다른 문제들은 무시하고 젠더 갈등과 세대 갈등의 주체로만 비춘다"고 비판했다.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시켜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은 약 29만 명의 동의를 받고 청원이 종료됐다.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혜택을 아무런 제한 없이 줌으로써 불평등의 효과가 극심하다'라는 이유로 1999년 12월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위헌 결정이 난 '군 가산점 제도' 부활에 대한 언급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군 가산점 제도 대신 인당 3천만 원 정도의 사회출발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어떠냐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권의 행태를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젠더 갈등을 지지율이나 득표수를 위한 도구로 활용하며 진정성 없는 논의를 진행 중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현재 논의되는 여성 징병제, 군 가산점제 부활은 젠더 갈등이나 현재 군(軍)이 당면한 군 인권 개선 혹은 국방 개혁이라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대가 당면한 주거, 취직 등의 다양한 문제들이 위와 같은 논의들로 가려져 있다. 오히려 사회적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한 논의의 책임이 있는 정치권에서 소모적인 논쟁을 부추기는 것으로 보인다. 해당 이슈와 정치권의 모습, 젠더 갈등의 해결책에 대한 순천향대학교 재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젠더 갈등의 심화를 실감했는지, 실감했다면 언제 어디서 실감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공통으로 '에브리타임을 비롯한 인터넷 게시판과 댓글, 언론을 통해 실감했다'고 언급했다. 젠더 갈등의 심화 양상을 보고 느낀 점을 묻는 말에는 '성별로 나누기 이전에 모두 다 같은 사람일 뿐인데 왜 자꾸 싸우려 드는지 모르겠다.'(여/22세), '젠더 갈등 심화의 이유가 궁금하고 차차 해결하고 싶다.'(여/21세), '근본적인 해결책에 대한 논의나 고민은 없고 그저 서로를 헐뜯기에 급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남/20세),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서로를 해치기만 하는 싸움이라 생각하고 정부가 중재하기는커녕 부추기는 모습에 불안감이 커진다.'(남/22세)라고 대답했다.

정치권에서 젠더 갈등과 관련해 여성 징병제, 군 가산점 제도 부활 등의 논의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자 답변이 확연히 갈렸다. '국민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논점을 잃었다고 생각하며 사회문제의 본질적인 원인에 대한 해결책이 아닌 현재 논란이 되는 문제를 막기에만 급급해 있는 것 같다'(남/20세),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고 그저 표를 얻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남/22세)고 답해 해당 논의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현했다. 반면, ‘이러한 젠더 갈등 문제에 정치권에서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여준다는 느낌을 받았다.'(남/22세)는 긍정적인 의견도 존재했다.

젠더 갈등의 원인에 대해서는 '서로의 불편을 이해하지 못하고 각자 편향된 시선을 가진 채 대화를 시도하기 때문인 것 같다.'(여/19세), '여성가족부의 설치 및 활동으로 남성들이 역차별받는다고 느끼는 것 같고 페미니즘에 대한 남성들의 부정적인 시선 때문인 것 같다.'(여/21세), '양성평등의 기준이 모호해 본의 아니게 남성 우월, 여성 우월이 주장되면서 갈등이 생긴 것 같다.'(여/22세), '가장 근본적으로 살펴야 할 것은 양성에 대한 실존하는 억압이며 언론이 자극적인 기사만 쏟아내고 사회갈등의 중재자 혹은 연결자 역할에 미흡했기 때문에 갈등이 격화된다고 생각한다.'(남/20세), '급진적 페미니즘과 이를 방관한 정부, 사회, 언론과 교사가 크게 기여한 것 같다.'(남/21세)라고 답했다.

젠더 갈등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에 대한 질문에는 '양성 모두 존중받아야 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여/21세), '문제 인식을 위한 건전한 소통이 필요하며 직접 논의를 하는 사람들이 각 집단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남/20세), '서로 간의 도를 넘는 혐오와 적대를 자제하고 양성에 대한 강자, 약자 프레이밍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한다.'(남/22세)라며 개인의 인식과 태도를 언급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젠더 갈등은 현시대를 대표하는 말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사회적으로 큰 이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듯, 사회적 문제 해결에 대한 책임이 있는 정치권에서는 갈등의 원인이나 근본적인 해결책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수박 겉핥기식의 얕은 분석과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드는 공수표만 오가고 있다. 젠더 갈등을 정쟁의 도구로 활용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청년이 당면한 문제인 청년 취업난, 주거 문제, 노동 환경에 대한 개선과 해결이 수반되어야 한다. 더하여 여성과 남성 모두에 대한 공정한 기회의 보장이 필요하다. 정치권은 탁상 앞에만 앉아 기름을 물로 착각하고 들이부을 것이 아니라 이 화재의 원인은 무엇인지, 어떻게 진압할 것인지, 우리의 '소화기'를 찾는 책임감을 보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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