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으로 병들어가는 서비스직 노동자들, 그러나 달라진 풍경
감정노동으로 병들어가는 서비스직 노동자들, 그러나 달라진 풍경
  • 양경욱 교수(경영)
  • 승인 2021.03.18 1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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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 익숙한 풍경들

무더운 여름날, 더위를 식히고 목 좀 축이기 위해서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카페에 들어가면 거의 항상 들리는 목소리가 있다. "고객님,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 이 말이 문법적으로 틀렸다는 것을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사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케잌 한 조각이 본인 시급보다 높기 때문에 커피에게 존칭을 사용하는 게 맞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말이다. 사실 서비스 노동자들이 과도하게 고객을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패밀리레스토랑에 가서 자리에 앉으면 점원이 주문을 받기 위해 오는데, 꼭 허리를 숙이거나 쪼그려 앉아서 나에게 시킬 메뉴를 묻는다. 아마 나와 눈을 맞추기 위해서, 그리고 나를 내려다보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서비스직 노동자들은 항상 죄송해 한다. "죄송하지만 고객님, 현재 재고가 떨어져서 그 상품은 구매하실 수 없으세요." "죄송하지만 고객님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어요?"등. 본인이 잘못한 일도 아닌데 항상 고개 숙여 고객에게 사과를 한다.

 

감정노동이란?

서비스 노동자들이 고객에게 친절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짓, 말투, 억양, 목소리 톤, 표정 등을 꾸며내는 것을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라고 한다. 처음으로 이 용어를 만들어낸 사람은 버클리대의 여류 사회학자인 앨리 혹실드(Alie Hochschild)이다. 처음 혹실드가 주목했던 이들은 비행기 승무원들이다.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전문가들이지만, 승무원들은 고객이라는 응석받이를 돌보는 엄마의 역할을 우선시하도록 항공사로부터 강요받는다. 그래서 화장을 짙게 하고 짧은 스커트 치마를 입으며 만면에 미소를 띠면서 승객들의 온갖 짜증과 불만, 요구를 일일이 다 들어주는 것이다. 혹실드에 의하면, 감정을 거짓으로 꾸며내기 위해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는 것을 표면연기(surface acting)이라고 한다. 그리고 메소드 연기처럼, 마치 내가 그 배역인 것마냥 몰입해서 감정을 느끼려고 노력하는 것을 내면연기(deep acting)이라고 한다. 감정노동은 이렇게 두 종류로 구분되지만, 어쨌든 서비스직을 병들게 하는 것은 같다. 최신 연구 성과를 요약하면, 감정노동은 탈진, 우울감을 일으키고, 알코올 의존을 증가시키고 심지어 가족 관계도 악화시킨다. 고객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에까지 내몰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최근에는 경비원이 주민의 극성을 이기지 못하고 그런 선택을 했다.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작은 발걸음

하지만 상황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KTX를 타면 승객이 승무원을 하대할 경우 처벌을 받는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요즘엔 패션브랜드 매장에서 옷을 사기 위해 결재 데스크에 가면 조그마한 안내문이 붙어 있는데, 역시 고객이 폭력적인 행동을 하면 처벌받는다고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어느 콜센터이든 전화를 걸면, 상담원도 누군가의 가족이므로 친절하게 대해달라는 대기음이 흘러나온다. 이제는 고객도 감정노동자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면서 감정노동자 보호법(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이 시행되고 있는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다. 감정노동자는 여전히 친절해야 하겠지만, 고객이 폭력적이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 응대를 거절할 수 있다. 모든 사업장에는 고객의 바람직한 태도와 행동을 요구하는 문구들을 게시해야 한다. 고객이 폭력적인 행동을 하면 노동자는 그 자리를 피해서 휴식을 취할 권리가 있다.

 

나가며

산업안전보건법 개정과 맞물리면서 지자체들도 앞다투어서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조례를 제정하고 있다. 서울시가 가장 먼저였고, 우리 충청남도에서도 2020년 9월, 충청남도 감정노동자 권리보호를 위한 조례가 제정되었다. 사회적으로 이제 감정노동의 피해가 고스란히 서비스직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법이나 조례의 시행만으로 감정노동자의 삶이 더 나아졌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고객이 솔선수범해서 감정노동자를 마치 내 친구, 가족과 같이 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는 자기 종업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감정노동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사업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사업주가 감정노동자 보호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 확실하게 패널티를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소중한 첫 걸음은 내딛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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