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폭우
느닷없이 이 가을, 폭우가 내렸다.
이제야 맺기 시작한 은행들 땅에 처박히고
은행잎들은 빗물과 함께 하수구로 떠내려간다
흐르지 못한 잎들은 여기저기 나부라진다
이른 가을 노란 카펫을 밟는다는 건,
돌아오지 않을 네게
오랫동안 속였던 내 마음을 들키고
참았던 문장을 쏟아냈던
지난 계절을 거꾸로 걸어보는 일
길거리에 흩어진 문장은
흘러가는 낙엽처럼
가을을 얇게 접는다.
병동을 나와서
조금만 힘을 줘도 바스러질 나뭇가지는
잎을 달고 있을 힘조차 없다
그렇게 가지만이 앙상한 나무는
안쓰러운 눈을 향해 가시를 돋운다
마른 침을 삼키고 무심하게
툭―
꺾어버린다
할아버지의 몸에는 검은 뿔이 자랐다
뿔이 잘려 나간 자리에
꾹―
낙관이 찍혀있을 것이다
다시 눈을 뜨면,
그 옆으로
매화 한 가지 그려나갈 것이다
상어
봄과 여름 그 언저리에 서서
나는 그가 죽어가는 것을 보고 있다.
그는 푸른 등을 메고
평생 잠을 자지 않는다고
숨쉬기 위해 헤엄치듯
헤엄치기 위해 숨을 쉬듯
그리 쉼 없이 산다고
언젠가 그는 강인한 얼굴로
자기와 닮으라 했다
그러나 이제 파도에서 내려와
그는 외롭고 따뜻한 바다에서
피를 토해내면서도
내 시선이 닿는 곳까지
이렇게 뭍으로 헤엄쳐왔다
감겨가는 그의 눈을 살펴
그의 등을 쓸어내리고 싶다
수심과 뭍에서 생긴 기압차가
그의 내장을 손상시켰건만
눈은 여전히 살아있다
그러나 이제 푸줏간의 고기처럼
머리는 전시되고
살점은 이내 누군가의 입으로 갈 것이다
바다와 뭍 그 언저리에 서서
여전히 살아있는
그의 눈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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