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순천향 창작문예 공모전 시 부문 당선작 「도토리의 여행」외 2편
제27회 순천향 창작문예 공모전 시 부문 당선작 「도토리의 여행」외 2편
  • 윤희지(국어국문, 16)
  • 승인 2021.02.17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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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의 여행

 

파도를 품은 산에서

도토리 하나 굴러 내려왔다

계절을 머금은 작은 몸

자꾸만 발길에 차였다

 

모래사장 위 도토리는

조개보다도 작았다

 

도토리의 바다는 망연했다

 

모래알 사이로 아득해지는데

멀리서 온 새 한 마리가 그를 물었다

숲의 열매는

물 위를 날았고

하얀빛을

미역 냄새를

구름을 짊어진 공기를 훔쳤다

 

도토리는 작은 마을 한가운데 떨어졌다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굴러가 한참을 누워있는데

푸른 눈의 아이가 다가와 손을 뻗었다

 

엄마

여기 도토리가 있어요

 


 

 

밤의 눈동자는 당신 것과 닮았네요

 

쟁반같이 둥근 건 베어 물까요

아니면 손으로 구길까요

둥근 마음은 굴러갈 테니까요

 

차오르는 건 바람을 뺄까요

부푸는 건 터지기 위한 일인걸요

무겁지 않을 것을

기울지 않을 것을 찾아요 우리

오늘 밤

나는 당신을 오해해요

 

우리 공놀이해요

절벽에서

빛은 죽일까요

마주 본 표정을 읽어낼 수 없을 테니까요

매끈한 부분은 찌그러뜨릴까요

모난 욕심 다듬을 칼은 없네요

 

아니요

다 됐고 그냥 홈런이나 칠래요

 


 

꿈꾸는 지도

 

남은 하나의 빛이 점멸하는 시간

벌거벗은 몸을 어둠 속에 숨기고

어제의 지도를 펼친다

모험을 시작한다

 

발 디디는 곳마다

욕망의 발도장 찍히고

 

보지 못할 거야

소리 없는 멀미를

규칙 없는 증오를

아무튼

나만 아는 흔적을

 

보고도 믿지 못할 거야

 

날이 밝으면 지도는 손바닥만해진다

비밀은 맛있으니까

접고

또 접어서

장롱 안에 은밀히 넣어둘 거니까

나만 맛볼 거니까

 

떫은데 달고

불결한데 뱉을 수 없는

그 꿈을

입안 가득 우물거리네

 

꿈꾸는 지도를 펄럭이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