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의 여행
파도를 품은 산에서
도토리 하나 굴러 내려왔다
계절을 머금은 작은 몸
자꾸만 발길에 차였다
모래사장 위 도토리는
조개보다도 작았다
도토리의 바다는 망연했다
모래알 사이로 아득해지는데
멀리서 온 새 한 마리가 그를 물었다
숲의 열매는
물 위를 날았고
하얀빛을
미역 냄새를
구름을 짊어진 공기를 훔쳤다
도토리는 작은 마을 한가운데 떨어졌다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굴러가 한참을 누워있는데
푸른 눈의 아이가 다가와 손을 뻗었다
엄마
여기 도토리가 있어요
달
밤의 눈동자는 당신 것과 닮았네요
쟁반같이 둥근 건 베어 물까요
아니면 손으로 구길까요
둥근 마음은 굴러갈 테니까요
차오르는 건 바람을 뺄까요
부푸는 건 터지기 위한 일인걸요
무겁지 않을 것을
기울지 않을 것을 찾아요 우리
오늘 밤
나는 당신을 오해해요
우리 공놀이해요
절벽에서
빛은 죽일까요
마주 본 표정을 읽어낼 수 없을 테니까요
매끈한 부분은 찌그러뜨릴까요
모난 욕심 다듬을 칼은 없네요
아니요
다 됐고 그냥 홈런이나 칠래요
꿈꾸는 지도
남은 하나의 빛이 점멸하는 시간
벌거벗은 몸을 어둠 속에 숨기고
어제의 지도를 펼친다
모험을 시작한다
발 디디는 곳마다
욕망의 발도장 찍히고
보지 못할 거야
소리 없는 멀미를
규칙 없는 증오를
아무튼
나만 아는 흔적을
보고도 믿지 못할 거야
날이 밝으면 지도는 손바닥만해진다
비밀은 맛있으니까
접고
또 접어서
장롱 안에 은밀히 넣어둘 거니까
나만 맛볼 거니까
떫은데 달고
불결한데 뱉을 수 없는
그 꿈을
입안 가득 우물거리네
꿈꾸는 지도를 펄럭이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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