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순천향 창작문예 공모전 수필 부문 당선작 「빗속의 나」
제27회 순천향 창작문예 공모전 수필 부문 당선작 「빗속의 나」
  • 김건(국어국문, 15)
  • 승인 2021.02.1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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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문 밖을 바라보니 희뿌연 뭉텅이가 산등성이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요즘에는 저런 것들이 안개인지, 미세먼지인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아 종종 무턱대고 창문을 열어놨다가 낭패를 보곤 했었는데, 오늘은 창문을 살짝 열어보니 살갗에 닿는 촉촉한 습기가 느껴져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얼마 만에 찾아온 비 소식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흙이 젖으면서 내뿜는 쾌쾌하고 텁텁한 냄새가 방 안을 가득 메우고 하나, 둘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이내 창 밖에서 쏴 하는 소리와 함께 시원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하던 과제를 잠시 멈춰두고 의자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그 풍경을 음미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라고 하면 습하다, 곰팡이가 생긴다, 신발이 더러워진다, 옷이 젖는다느니 하며 불청객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특히 올해 발생한 폭우 사태로 이러한 인식은 더욱 강해져 많은 이들에게 비라는 것이 불편한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러한 비를 어릴 적부터 여태까지 좋아해왔다. 하늘이 잿빛으로 천천히 덮어 씌워지고 습도에 푹 젖은 흙에서, 아스팔트 도로에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면 나는 괜스레 오랜 친구를 만나는 것 마냥 들뜬 기분이 된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창틀에 그어지는 그 아름다운 빗금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눈을 감고 가만히 소리에 집중하는 것이 나의 소소한 취미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자연이 내려준 감상의 시간을 즐겼으면 하는 마음에서 내 경험을 통해 비의 아름다움을 전달해보려 한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토요일이 되어 학교가 일찍 끝나게 되면 친구들과 함께 주변을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 즐거운 일상을 뒤로 미뤄두는 상황이 딱 하나 존재했는데, 비가 오는 날이 바로 그것이다.

  10살 무렵, 서울에서 수원으로 전학을 가게 된 나는 낯선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 채 학기 초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집에 혼자 돌아온 나는 날이 잔뜩 흐려 어두컴컴해진 거실에서 부모님이 해두고 가신 반찬이 돌아가는 전자레인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저 멀리서 둔탁한 소리와 함께 빛이 번쩍였고 집 안의 모든 불빛이 순간 자취를 감췄다. 놀란 나는 울어야 할지, 반찬부터 꺼내야 할지 허둥지둥 대고 있었는데 그 찰나에 쏴 하는 소리와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창틀에 부딪혀 얼굴이고 팔이고 툭툭 튀어 오르던 비를 맞으며 나는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 한동안 천막을 치고 허둥대는 발걸음이 이어지다 어느 순간 사라지고 정적속의 요란한 빗소리만이 집 안을 가득 채우게 됐는데, 묘한 편안함을 느낀 나는 겉에만 따뜻해진 계란찜을 꺼내서 식탁에 올려두고 먹기 시작했다. TV도, 전등도 꺼진 어두컴컴한 방에서 오직 빗소리와 젓가락이 사기그릇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오묘한 합주를 이루어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압도적인 고독함 속에서의 완벽한 안정의 공간을 느꼈다. 나를 제외한 세상이 잠시 멈추고 오직 비만이 나를 감싸는 작은 방 안의 공간.

  밥그릇을 대충 비운 후 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가 밖을 둘러보았다. 앞집 옥상에 놓인 이불은 처량하게 젖어가고 그 아래로 툴툴대는 아주머니가 계단을 서둘러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난간과의 적당한 거리를 두고 튀어 오르는 비를 온 몸으로 맞던 나는 문득 묘한 욕망이 일어 난간 가까이로 걸어가 손을 밖으로 뻗어보았다. 요란한 소리에 걸맞게 빗방울들이 손바닥에 따갑게 부딪히며 흘러내렸고 나는 한참이나 그 앞에서 손을 내밀고 빗방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이미 온 몸은 난간에서 튄 빗방울들로 흠뻑 젖었고 더 이상은 손이 따갑지 않을 정도의 소박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손을 몇 번 털고는 집 안으로 들어가 젖은 옷을 대충 빨래 바구니에 던져두고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명상이, 고독함이 뭔지도 모르던 어린 아이였기에 단순히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을 뿐이지만 침대에 누워 금방 느꼈던 경험을 곱씹었던 것은 라는 것이 이토록 친근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는 새로운 감각을 새겨두기엔 충분했다.

  이 날을 기점으로 나는 비가 오는 토요일이 되면 주머니 속 구겨진 용돈들을 꺼내들며 PC방에 가자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집으로 달려와 그날의 기억을 재현하곤 했다. 집 안의 모든 불을 끄고 창문을 활짝 연 채 바깥의 소리와 광경에 집중하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숨바꼭질을 하는 것처럼 소변이 마려워지는 잔잔한 흥분감이 그 당시에는 그렇게도 좋았었나보다. 이 놀이는 비가 그치거나 부모님이 돌아오시면 종료되었지만 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음 비 소식을 기대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나니 '비'라는 것이 마치 나 혼자만이 사귀는 비밀친구와도 같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친구도, 부모님도 모르지만 나는 항상 비를 반갑게 맞이해주고 시간을 아낌없이 할애했었다. 적어도 나에게 비는 그러한 존재로써 각별한 것이었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2km 정도 떨어진 학교에 매일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 물론 부모님께선 자전거에 녹이 슬거나 미끄러질 수도 있기에 눈이나 비가 오는 날에는 버스를 타라고 하셨으나, 비 오는 날의 버스가 품고 있는 습기는 가히 지옥과도 같은 것이었고 철이 없던 나는 부모님의 충고를 무시한 채 눈과 비를 맞아가며 자전거를 타곤 했다.

  고등학생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름이 되었고 '볼라벤'이라는 태풍이 한국을 강타했었다. 학교에선 등교와 휴교의 경계선에서 한참을 저울질하다 등교를 하라는 지시를 내렸었고 나는 헛된 희망이 좌절된 상태로 집을 나섰다. 당연히 등교가 가능한 수준이라면 위험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자전거의 자물쇠를 풀고 대문 밖을 나선 나는 세차게 몰아치는 비바람을 마주했다. 차라리 자그마한 나뭇가지라도 날아다녔으면 지레 겁을 먹고 애초에 버스를 탔었겠지만 학교 측과 마찬가지로 그 경계의 애매한 지점에서 갈등하던 나는 결국 버스카드를 주머니 깊숙이 넣어두고 자전거 안장에 올라탔다.

  딱히 도전 정신이 일었던 것도 아니었고 철없는 시절의 별 생각 없는 행동에 불과했으나 자전거의 가속도마저 상쇄시켜버리는 강력한 바람을 뚫고 페달을 밟던 그 순간, 나는 익스트림 스포츠에서나 느낄법한 강렬한 긴장감과 쾌감을 느꼈다. 다들 외출을 자제하던 탓에 차들마저도 적었던 도로 옆을 달리며 온 몸으로 태풍에 맞서던 나는 아무도 몰랐겠으나 TV에서나 보던 사이클 선수들이라도 된 것 마냥 비범한 심정으로 등교를 하고 있었다.

  10분이면 도착하던 학교를 30분이 넘게 걸려서야 도착한 나는 흠뻑 젖고 산발이 된 머리를 훌훌 털며 교실로 들어갔다. 등교가 미뤄진 탓에 교실에는 절반 정도의 친구들만이 있었고 몇몇은 나를 보며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해댔지만, 이미 한 차례의 고난을 극복하고 온 듯한 뿌듯함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는 찬사에 불과했다. 흠뻑 젖은 교복을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묘한 상쾌함을 느끼며 하루를 보내던 나는 바람이 잦아든 하굣길을 아쉬워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결국 집에 돌아가 부모님께 눈물을 찔끔 흘릴 정도로 혼이 났지만 비밀 친구와 치열하게 겨뤘던 그날의 레이스는 아직까지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종종 비는 우리에게 가혹한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천둥과 번개를 끌고 오는 것은 물론이고 태풍이 되어서 올 경우에는 그 장대한 바람소리로 우리에게 강렬한 위험을 경고한다. 물론 태풍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도 있으니 마냥 좋다고만 할 것은 아니겠으나, 나는 적어도 태풍이 올 때, 대비는 대비대로 하되 강력한 바람이 창틀을 무자비하게 흔드는 순간만큼은 철없던 그날의 레이싱 선수를 떠올리며 그 강렬한 흥분을 되새김질하곤 한다. 이제 그러한 행동의 위험성을 철저하게 학습한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운 탓에 아직 철들고 싶지 않은 나 자신이 과거의 파편을 잠시 꺼내보는 것이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어릴 때처럼 몸이 푹 젖든 말든 빗속에 몸을 맡긴다거나 태풍을 자전거 하나로 뚫어보려는 무모한 시도는 쉽게 해내지 못했다. 이것이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어른이 되어서인지, 겁을 잔뜩 먹은 겁쟁이가 되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언가가 항상 나와 비 사이를 가로막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과제, 공모전, 아르바이트 등 여러 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문제가 생겨 '나'라는 인간 그 자체가 소진되어버릴 것 같던 힘든 시기에 비가 내린 적이 있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담배만 연달아 피우던 나는 뒤죽박죽이 된 머릿속을 정리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가 문득 충동적으로 우산도 없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와중에도 꼴에 어른이라고 마치 우산을 깜빡하고 나와 급하게 집으로 되돌아가는 척을 하며 자취방 근처를 빙빙 돌며 뛰어다녔다. 이미 슬리퍼는 물기를 가득 머금어 발목까지 미끄러져 올라가기를 반복했고 주머니에 넣어둔 담배는 빗물에 푹 젖어 너덜해진 상태였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가 발바닥이 따갑고 다리가 저려오는 시점에 멍하니 서서 하늘을 바라봤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격한 눈물이 흐르거나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고요하고 거대하게 내려오는 빗속에서 홀로 서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정말 오랜만에 후련한 기분을 잔뜩 느끼고 있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푹 젖은 옷을 세탁기에 넣어두고 목욕을 하고 나와 다시 의자에 앉았다. 어지럽던 머릿속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고 나를 힘들게 하던 일들이 사실은 그저 하나의 사건에 지나지 않음을, 내 인생은 그런 것들로는 망가지지 않음을 스스로 굳게 다지게 되었다. 참 놀라운 경험이었다. 상담도, 명상도, 담배도 해결 못하던 문제를 비 한번 맞았다고 해결해내는 것이.

 

  이런 기억들로 나는 '비'라는 생명이 없는 자연현상에 불과한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그 아름다움을 즐긴다. 내가 만약 나이가 들어 생에 못 다한 일들을 하려고 할 때, 자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닌다면 그 얼마나 행복한 노후이겠는가. 적어도 비가 나를 떠나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어떤가? 아직도 비가 그리 거추장스럽고 불쾌한 존재로만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참 아쉬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일상 속에 불현 듯 찾아오는 순간들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은 꼭 추천해주고 싶다. 그 누구라도 이 글을 읽고서 곧 다가올 눈의 계절에서 봄비를 기다리게 된다면 무척이나 기쁜 일이 될 것이다. 여기까지 장황하게 나열한 비에 대한 예찬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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