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순천향 창작문예 공모전 소설 부문 가작 「언커넥트 다이어리」
제27회 순천향 창작문예 공모전 소설 부문 가작 「언커넥트 다이어리」
  • 박혜현(법학, 18)
  • 승인 2021.02.16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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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년 7월 24일]
쏴아악. 쏴아악. 열어놓은 창문 사이에서 장대비가 쏟아지는 소리와 함께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방안에 빗물이 조금씩 들어오지만 시원한 바람을 맞는 것이 빗물을 닦는 수고스러움을 이겼다.
‘이 놈의 장마... 언제 그칠려나’
고약한 장마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장마철을 알리는 이 장대비 소리와 시원한 바람을 즐기는 모순된 마음을 가지고 산다. 빗소리와 어울러진 어두운 방의 정적을 깨기 위해 방 스위치를 킨다. 현재 시간 오전 8시 40분. 일어나자 마자 화장실로 직행하여 세수와 양치를 한다. 현재 시간 오전 8시 50분.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고 잠옷 바지는 그대로 두고 상의는 검정색 티로 갈아입는다.
‘흠... 이 정도면 뭐... 양반이지. 아무도 내가 20분 전에 일어난 건 눈치도 못 챌 걸?’
나는 1시간 30분 전에 일어나 아침밥을 챙겨 먹고 여유 있게 아침 요가까지 한 사람인 냥 연기를 한다.
현재 시간 오전 8시 55분. 노트북을 켜고 출근을 한다.
[제니퍼: 안녕하세요~]
[바셀: 좋은 아침입니다.]
[다우니: 네~ 좋은 아침입니다.]
[엘린: 오늘도 파이팅 합시다!”]
타탁타다닥
[로제: 네! 엘린님도 파이팅 하세요~]
나의 손마디와 컴퓨터 키보드의 화합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회사에 입사한지 1년이 지났지만 나는 내가 다니는 회사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사실 실제 존재하고 있는 회사인가 의문을 가질 때도 있다. 어느 날 회사로 가봤더니 없는 회사이면 어쩌지? 만약 나 사기를 당하고 있었던 거면 어떨 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매달 10일이면 들어오는 월급 통장이 ‘너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실존해!’라고 말해준다. 대학생 시절 내가 꿈꾸던 직장 생활은 왼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흰색 블라우스에 검정 슬랙스 그리고 4cm 남짓 높이의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출근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망할 놈의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나의 직장생활은 흰색 블라우스가 아닌 BYC 검정티셔츠와 검정 슬랙스가 아닌 잠옷바지 그리고 맨발이다.
금방 잠들 줄 알았던 코로나 19는 한국은 21년 11월에 종식이 되었지만, 미국이나 영국에서 22년 4월에 종식이 되었다.  한국이 먼저 종식 선언을 했어도 외국에서는 종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불안감은 22년 4월에 종식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코로나 19는 94백 5천 2백만명의 확진자와 24만명의 사망자를 만들었다.종코로나 19가 종식되면 너나 할 것 없이 국내여행, 해외여행, 각종 행사로 시끄러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세계는 언커넥트 세상으로 변했다. 바이러스에 세계가 큰 충격을 먹었는지 서로가 서로를 꺼리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또한, 어쩔 수 없이 적응하고 편해진 온라인 세상, ZOOM(화상 회의 사이트)은 우리의 완전한 세상이 되었다.

[2027년 8월 11일]
현재 시간 오후 4시
[제니퍼: 자. 오늘은 회식 날이니까 여기까지 합시다. 늘 말했듯이 우리가 분기마다 얼굴 보는 거니까 1년에 4번밖에 못 봐요 . 그러니 웬만하면 다들 참석하도록 해요~]
[바셀: 네, 제니퍼님]
[스펄: 네, 알겠습니다. 6시에 뵙겠습니다.]
우리 회사는 분기마다 회식을 한다. 나는 미래의 나의 결혼식 축의금을 위해 분기회식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아마도 모두가 그럴 것이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있고 대가로 움직이는게 세상이다. 그런데 친구도 아니며 볼 때마다 낯선 이 사람들을 위해 회식장소까지 가는 수고를 대가 없이 하는 것은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단장을 하고 신논현역 4번 출구에 내렸다. 현재 시간 오후 5시 40분. 주위를 들러본다. 주변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가끔은 북적북적한 지하철이 그립다. 재택근무가 고착되더니 지옥의 9호선은 옛말이 되어 버렸다. 아마도 미래의 나의 자식들에게 “엄마때는 9호선을 지옥의 9호선이라고 불렀어. 출근시간하고 퇴근시간에 사람들이 엄청 많았거든.” 이라고 말해줘야 겠다. 생각해보면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에 사람들이 많은 이유부터 설명을 해야할 것 같다. 영양가 없는 생각들을 하면서 걸으니 회식장소에 도착을 했다. OO화로.
‘역시 회식은 고기지. 이걸 변화시킬 수 있는 건 그 아무것도 없을 걸? 재앙이 찾아온다 해도 사람들은 고기를 먹을 거야.’
고깃집에 들어선다. 테이블 마다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는 저 가장자리 벽에 칸막이를 다 빼고 테이블을 붙여 놓은 것 보니 저쪽이 우리 팀 회식인가보다.
“안녕하세요~로제입니다!”
“응~ 왔어? 역시 우리 로제는 회식 참석률 100% 라니까! 아주 좋아!”
“당연하죠. 팀장님 ㅎㅎ”
“팀장님? 팀장 소리 오랜만에 듣네. 하하. 이러다가 내가 팀장이라는 것도 까먹겠어~”
코로나 19가 우리 일상에 많은 변화를 주고 갔다. 사람들은 자신을 들어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자기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이름에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사실 내 이름은 지원이다. 내가 지원이라는 사실은 팀장인 제니퍼도 모른다. 똑같이 나도 제니퍼의 본명을 모른다. 본명을 알고 있다는 것은 정말 깊은 관계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같은 공간에서, 같이 마주보고, 술잔을 부딪치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서로의 본명을 모른다. 처음에는 이 세상에 괴리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ZOOM(화상 회의 사이트)가 내 대학생활에 스며든 것처럼 처음에는 불편하지만 적응을 해야 했고 지금은 이름에 마스크를 씌운 것이 매우 편하다. 이름 위의 마스크를 벗는다면 벌거벗은 느낌일 것 같다.

[2027년 9월 15일]
창문 사이에서 차가운 공기가 들어온다. 나는 차가운 공기가 마음에 들어 창문으로 가 밖을 내다본다. 초가을을 알리듯 서늘한 공기가 무더운 여름에 홀로 날뛰던 태양을 식힌다.
‘사계절은 변하지 않았는데,,,세상은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내 세상은 왜이리 변한거지?’ 늘 시끌벅적한 세상에 대한 그리움이 마음 한 켠에서 자리 잡아 있다. 초가을이라 더욱 고요해 보이는 거리는 내 마음까지 고요하게 만들었고, 그러한 이유에서인지 오늘따라 나의 마음이 시끄럽기를 바란다.
띡띡띡띡띡 삐리리
나의 마음을 들었는지 언니가 왔다.
“언니~ 뭐하고 왔어?”
“내가 뭣하러 나갔겠어. 남자친구 만나고 왔지!”
“지금 애인 있다고 자랑하는 거야. 뭐야.”
“응~오늘 5년~”
‘치잇- 부럽긴 하네. 나도 코로나 전에 애인 만들어 놓을 걸. 망할 놈의 코로나’
외출을 하는 횟수가 줄어드니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어졌다. 코로나 전에 쌓아 놓은 인맥들이 유일한 인맥이다. 이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렇게 생활을 하다가 평생을 솔로로 살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새로운 관계 맺기라는 것은 귀찮고 때로는 위험한 것이다. 따라서 신중하고 신중해야 한다. 되도록이면 지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당신의 커넥트는 꺼져있나요? 스위치가 굳어서 작동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킬 생각을 하실 겁니까? 온커넥트 안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온커넥트와 함께하세요!”
‘온커넥트? 이름 한번 잘 지었네’
이름 한번 잘 지었다. 코로나 19가 종식 선언 기미가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모바일 데이트 앱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맹세코 데이트 어플을 쓰지는 않을 거야.’라고 다짐했던 예전 최지원을 배신하듯 나는 온커넥트에 관심이 갔다.
‘결혼식 축의금은 받아야 할 거 아니야..’
언니가 보알기안 되기에 나는 방으로 들어가 온커넥트 어플을 핸드폰에 다운 받았다. 온커넥트가 하라는 대로 사진을 찍고, 연령대, 직업, 성격 등을 입력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로제님의 점수는 87점으로 B등급입니다.]
‘치잇- 겨우 3점 때문에 B등급이라니. 그래도 B등급에서는 상위권이네’
나의 성격과 등급에 맞는 남자들의 프로필이 줄을 잇는다. 데이트에 목마른 사람들 진짜 많다고 생각을 한다. 프로필을 쭉 둘러보다가 남자에 목 말라 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나는 소름 끼쳐 하며 나가기를 누른다.

[2027년 9월 19일]
평소처럼 집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 업무를 하던 중 오랜만에 나의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나는 반가운 손님에게 반응을 보이기 위해 핸드폰을 켰다.
[포터: 안녕하세요! 프로필 보고 마음에 들어서 연락 드렸어요~]
이틀 전에 온커넥트를 삭제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잘못 찾아온 손님을 대하듯 실망감을 머금고 나가기를 누르려던 찰나에 잘못 찾아온 손님의 프로필 사진을 봤다. 이게 웬 걸. 순간에 잘못 찾아온 손님은 잘 찾아온 손님으로 바꼈다. 이 손님의 목적지는 나다.
‘그래도 지금은 근무 시간이니까,,,’
나는 포터의 메시지를 읽지 않고 내려 놓았다. 하지만 포터의 메시지를 본 이후에 나는 일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될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새로운 사람이라니!!! 이 얼마만에 느껴보는 남자인가!!!’
[제니퍼: 자. 퇴근시간이네요. 오늘 다들 수고 많았어요. 다들 내일 봅시다.]
나는 제니퍼의 말에 답변을 하지 않은 채 바로 나가기 버튼은 눌렀다. 누군가는 답변을 해줬을 것이다. 제니퍼도 내가 바로 나간 이유를 알면 이해해 줄 것이다. 제니퍼를 이해시킬 기회도 없겠지만 이 상황에서 이정도 합리화는 합법이다.
‘너무 늦지는 않았겠지?’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온커넥트 어플에 들어갔다.
[로제: 안녕하세요. 일이 지금 끝나서 늦게 답변 드리네요.]
나는 메시지를 전송해 놓고 혹시나 맞춤법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표현이 잘못된 부분이 없었는지. 짧은 문장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그 때 포터의 프로필에 분홍색 불빛이 들어왔다. 나는 바로 대화방을 나갔고 포터의 답장을 기다렸다.
[포터: 네! 괜찮습니다. 저도 방금 일이 끝났네요 ㅎㅎ]
[로제: 네, 그러시군요.]
전송을 눌러 놓고 나는 주먹을 머리를 몇 번이나 내리쳤는지 모른다. 정말 딱딱하니 짝이 없다. 이래 놓고 무슨 애인을 만들겠다고 설쳤는지 부끄러울 뿐이다.
[포터: 네~ 이제 저녁 드실 시간 아니세요?]
‘오, 그래도 말을 잘 이어가 주네..’
[로제: 네 ㅎㅎ]
[포터: 저는 오늘 파스타 먹으려고요~ 로제님은 저녁 메뉴는 정하셨어요?]
[로제: 음.. 저는 집에 있는 반찬하고 간단하게 먹으려고요.]
[포터: 아 그러시구나 ㅎㅎ]
[포터: 부럽네요~ 하루 종일 집에 있지만 집밥을 먹은지는 정말 오래된 것 같네요.]
[로제: 요즘은 다들 그렇게 살죠 뭐~]
[로제: 맛있게 드세요!!]
[포터: 로제님도 맛있게 드세요 ㅎㅎ]
“야, 최지원. 너 왜 실실 쪼개고 있냐”
언니가 갑자기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왜 남의 방을 벌컥 벌컥 열어!!”
“밥 먹으라고 몇 번을 말해도 대꾸 없던 애가 누군데?”
다른 집은 언커넥트 시대가 와서 가정이 더 화목해 졌다는데 우리집은 예외인 것 같다.
외출이 유일한 출구였는데 집 안에만 갇혀 있으니 저 웬수랑 부딪칠 수밖에

[2027년 9월 22일]
오늘은 금요일. 재택근무를 하더라도 금요일은 언제나 불금이다. 굳이 밤에 클럽에 나가 엉덩이를 흔들고 모르는 사람들과 몸을 맞대며 공기를 공유하는 것은 불쾌한 금요일이다. 나한테 불타는 금요일은 족발과 소주로 충분하다.
삐빅-
“꺄! 드디어 왔구나 나의 족발~”
코로나 19 이후 배달 어플은 미친듯이 상승을 했고 새롭게 지어지는 아파트들 역시 현관문 앞에 음식 보관함, 택배 보관함 등을 구비했다. 가끔은 배식 받는 기분이 들지만 배식이면 어떠냐. 예전에 현관문 뚜드리는 소리에 돈을 들고 현관문으로 달려가는 사람 한명 숨는 사람 여러명이었지만 지금은 삐빅 소리를 듣고 굳이 숨는 사람 없이 아무나 음식을 가져올 기회를 부여받는다. 나는 이점이 제일 좋다. 왜냐하면 그 전에는 망할 언니 때문에 내가 나가서 음식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포터: 오늘 불금인데 야식 맛있게 드세요 ㅎㅎ]
[로제: 네! 지금 족발 왔네요~ 얼른 금요일을 불 태워야 겠어요~]
[포터: 저도 족발 좋아하는데~]
나는 족발이 들은 배달 봉지를 손에 쥔 채 벙쪘다.
‘뭐지? 그래서 뭐. 나랑 공통 부분이 있다는 건가? 나랑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건가? 아 뭐야 뭐야~~~’
고개를 들고 식탁으로 가는 순간 신발장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봤다.
‘꼴에 남자랑 연락한다고 너무 입꼬리가 올라갔네.’
나는 언커넥트 세상에 완전히 적응 래버린 동물 같았다.

[2027년 9월 27일]
타닥타닥타타타타다닥
근무시간 내내 나의 생각은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손가락과 키보드로 표현됐다. 어떤 때는 입보다 더 정확하고 명료하고 빠르다. 그런데 요즘은 한가지 요소가 더 추가됐다. 바로 포터이다.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포터가 계속 머릿속에서 맴돈다. 그가 자상한 탓일까? 아니면 내가 미친건가? 포터는 뭐하고 있을까? 포터는 내 생각을 할까? 포터는 본명이 무엇일까..
‘아마도 정말 세련된 이름 일거야 닉네임 작명 솜씨 보면 센스도 남다르고. 아 근데 왜 포터는 나랑 만나자고 안 하는 거지? 흠.. 처음부터 적극적이어서 먼저 만나자고 할 줄 알았는데 아니네.. 포터한테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건가? ’
나는 포터를 한 번이라도 만나봐야 누군가에게 만나봤는데 그 사람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든다고 떠들 건덕지가 생긴다. 그 건덕지 하나로 나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 한 사람한테 빠졌다는 질타를 면할 수 있고, 나도 나를 자책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에 요즘은 얼른 포터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한다.
 

[2027년 10월 10일]
[포터: 잘 잤어요?]
이렇게 자상한 포터하고도 연락한지 곧 한달이 다 되어 간다.
[로제: 네 잘 잤어요. 포터님은요?]
[포터: 오늘 주말이라 늦장을 치우고 싶었는데, 로제님하고 연락하고 싶어서 바로 일어났죠 ㅎㅎ]
‘내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되지? 흠 한달이면 충분히 시간을 가진 것 같으니까 한달 전에는 내가 포터 만나기를 성공하겠어!’
[로제: 아, 그러시구나. 포터님은 오늘 주말인데 뭐하세요?]
[포터: 음… 평일에 컴퓨터 앞에서 진땀 뺏으니까 뇌에게 휴식시간 좀 줘야 겠어요~]
[로제: 오늘 저랑 만나실래요?]
[포터: 아…! 휴식시간을 준다는게 아버지랑 같이 골프치러 갈까 생각중이에요~]
[포터: 로제님의 첫 데이트 신청을 이렇게 거절하다니ㅠㅠ]
[포터: 다음에 만나요!]
[로제: 네 그래요 ㅎㅎ]
‘흠,,, 너무 성급했나?’
꿀 같은 주말을 데이트 신청 거절로 다 망가졌다.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서 내가 성급했던 것인지 포터가 착각할 만하게 얘기를 한 건지. 포터가 꾀를 써서 빠져나간 건지. 무한 궤도를 돌리며 주말의 끝으로 달리고 있었다. 오후 9시 21분.
[포터: 이제 집에 도착했네요~ 뭐하시고 계세요? 저 기다리고 계셨던거면 좋겠네요~]
‘이 새끼는 카사노바가 분명하다.’
나의 데이트 신청을 거절하고 하루 반나절은 연락이 없다가 저녁 9시가 넘어서야 답장을 한다? 그리고 염치도 없게 자기를 기다리고 있었었으면 한다? 참나! 사실이다. 나는 포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핸드폰을 붙잡고 포터 프로필에 분홍색 빛이 켜지나 안 켜지나 들락날락 중이었다. 근데 저 애교에 다 풀렸다.
‘나 정말 미쳤나봐..이정도면 애인 대하는 자세 아니야?’
‘흠 아무렴 어때 얼른 포터 만나보고 싶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포터는 나의 데이트 신청을 거절하거나 무산시켜버렸다. 점점 나도 포터한테 질려가고 재미가 없어질 때쯤 포터는 내 분위기를 눈치라도 챈 듯 다음주 주말에 데이트 신청을 했다. 나는 당연히 데이트 신청을 받아들였지만 마음 속으로는 어차피 무산되겠지 한번만 더 무산해봐라! 친구 병문안, 잊고 있었던 선약, 가족 모임, 갑자기 생겨난 위경련 이제 핑계도 없겠다!!

[2027년 10월 15일]
현재 시간 오전 11시 30분. 포터와 첫 데이트를 하기 6시간 전. 아직 포터는 오늘 못 만날 것 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그런 분위기를 잡지도 않는다. 이게 웬걸? 오늘 진짜 만나나 보다.
‘와 이 얼마만에 만나보는 새로운 사람이라는 건가!!!’
나는 너무 들뜬 나머지 침대 모서리에 정강이를 부딪히고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 넘어졌다. 침대에 넘어지는 순간에도 들뜬 제스쳐가 다 담겨 있었다.
“으 하하하하! 진짜 안 아픈걸!! 진작에 사람 좀 만나고 다닐 걸 그랬네!! 역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야~ 옛말이 틀린 말이 아닌가보네!!!!!’
나는 똥배가 나올 걱정으로 옷 핏을 살리기 위해 점심을 굶었다. 집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다이어트와 절교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밥 한끼 굶었다고 이렇게 힘들줄이야.. 얼른 포터 만나서 다 먹어야지!! 첫인상이 중요한 거니까 데이트 후반부터 배가 나오든 말든 상관없다는 합리화를 마친 채 나는 옷장을 열었다. 당연히 예쁜 옷은 없었다. 죄다 흰티, 검정티 등 재택근무할 때 안성맞춤인 옷들뿐이다. 나는 고민할 시간도 낭비라는 듯이 언니한테 달려갔다.
“언니 옷 좀!”
“왜”
“데이트”
“지구 멸망하는 소리하네”
“진짜야!!!”
“이응 골라가”
“아싸 땡큐!!”
역시 언니가 있어서 가장 좋은 점은 옷이다 옷!
현재시간 4시간 30분. 데이트 1시간 전. 포터와 저녁으로 족발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처음 족발을 먹자고 한 것은 포터였다. 순간 당황스럽지만 전에 족발 좋아한다고 했던 거를 기억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래도 첫 데이트에 족발? 센스가 생기다가 말았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목적지에 다다랐다.
[로제: 포터님 어디쯤 이세요?]
[포터: 네! 로제님 보입니다!! 분홍색 치마 입고 계신 분 맞죠?]
[로제: 네 ㅎㅎ]
멀리서 보이는 생각보다 키가 작지만 얼굴은 내 스타일인 남자가 자신이 포터라며 반가운 얼굴을 하고 온다. 정말 긴 시간동안 온커넥트를 해서 그런지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바로 족발집으로 향했다. 족발과 막걸리를 시키고 잠깐의 정적이 흘렀지만 모든 각본이 짜여있던 것처럼 포터는 먼저 말을 걸었다. 목소리를 이번에 처음 듣는다. 이게 말이 되는 거냐. 얼마나 연락했는데 이제야 보게 되다니 너무 아쉽다는 등. 속으로는 너가 한 행동을 보고도 그 말이 나오냐고 소리 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직 포터는 나의 평가지에서 호감에 들어서 있으니까. 족발이 나오고 술을 한잔 두잔 마시기 시작했다. 취기가 오르더니 나도 긴장이 풀리면서 포터와 시답지 않은 얘기, 회사 얘기 등을 하면서 재밌게 놀고 있었다. 그런데 술에 점점 취하더니 가장 궁금했던 질문이 나오고 말았다.
“포터씨, 그런데 제 데이트 신청은 매번 무산한 이유가 뭐에요?”
포터는 망설이더니 
“사실 온커넥트로 연락하는 사람들이 로제씨만 있는게 아니에요. 로제씨는 잘 모르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했었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 보면 진짜 모르시네요! 다들 저 같은 가벼운 마음? 로제씨도 알다시피 점점 집에서 재택근무하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 줄어들다 보니까 말동무가 없잖아요! 그래서 전 온커넥트로 사람들 만나면서 다녔습니다. 그리고 요근래 만나자고 한 사람들이 많아서 죄송하지만 번번히 약속을 깨버렸네요.”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럼 지금까지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부르스를 떤 것 아니었나.. 포터가 말하는 것 보니 포터도 내가 자신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 같다.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로제씨가 저한테 호감가지고 계신 거 알고 있습니다. 제가 워낙 말투가 둥글둥글하다 보니까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말동무가 필요해서 온커넥트를 시작한 것뿐이었습니다.”
나는 너무 벙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이 카사노바가 하는 말은 나 같은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다라는 속보였다.
“그러시구나. 뭐 그럼 어쩔 수 없죠”
마음 같아서는 하나하나 다 따지고 싶지만 더 이상 구차해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이후 포터와의 대화를 하는 둥 마는 둥 막걸리만 죽어라 마셨다. 포터는 이제 그만 일어나자고 했고 나도 집 가고 싶어했다는 티를 내며 대답을 했다. 지하철에서 작별인사를 나누고 지하철을 탔다.
‘그래,, 사람은 피부가 닿으면서 알아가야 하는 거지’
한숨을 내쉬고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지하철안에 법이 있다고 믿을 정도로 사람들은 한 칸씩 띄어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랬다. 무사히 집으로 들어오고 침대에 누웠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서능한 바람은 내 코끝을 찡하게 했다.

언커넥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