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순천향 창작문예 공모전 소설 부문 가작 「옥탑의 수분」
제27회 순천향 창작문예 공모전 소설 부문 가작 「옥탑의 수분」
  • 전지영(국어국문, 16)
  • 승인 2021.02.1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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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너는 대학교 1학년 때 기숙사 룸메이트로 만난 친구 사이다. 대학 졸업 후, 일러스트레이터로 커리어를 쌓아가는 ‘나’와 취업준비생인 ‘너’는 독립한 사회초년생들이 겪는 가난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나’에게 ‘너’는 대학생활 때 사귄 첫 친구이자 힘든 상황에 빠진 자신을 외면하지 않고 손 내밀어준 사람이다. 그래서 ‘너’가 취업준비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자신에게 무기력함을 느끼지만, ‘너’의 곁에서 자신의 존재가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를 소망한다.

 ‘너’는 그런 ‘나’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금전적으로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과거의 자신과는 비교되는 모습에 열등감과 죄책감을 느낀다. 그래도 ‘나’가 곁에 없었다면 취업을 준비하면서부터 겪고 느낀 일들을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연히 ‘나’의 진심이 담긴 그림을 보고 ‘너’는 다시 한 번 지쳤던 마음을 되잡는다.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두고, 의지하지 못했던 가족에게 손을 내밀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다.

 이 이야기는 ‘나’와 ‘너’라는 두 인물이 각자의 삶에서 서로의 자리를 남겨두고 이내 서로의 삶에 녹아드는 이야기이다. 취업의 어려움과 같은 현실이 지치고 힘들게 만들지만, 그 곁에 자신을 온전히 믿어주는 시선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몸 하나 편히 쉴 수 있는 옥탑과 같은 공간이 있다면 어떤 일이라고 버텨내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는 마음을 담은 이야기이다. 각자의 힘듦을 같이 짊어줄 사람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맞은편에 앉은 네 얼굴을 바라보았다. 지나치게 햇볕 아래 놓아 둔 빨래처럼 바삭하고 부서질 듯이 메마른 얼굴의 표면, 하얀 각질이 도드라진 입술, 벽을 멍하니 바라보는 빳빳한 너의 눈동자. 너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잃어버린 사람 같았다.

 너의 웃음을 본 적이 언제였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는 내 시선을 눈치 채지 못한 채 어떤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내가 네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입술을 달싹거리다 결국 입을 닫았다.

 

 네가 오랜만에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해서 집근처 자주 오던 카페로 나온 참이었다. 1500원짜리 아메리카노 두 잔. 네가 손에 아무런 종이도 들고 있지 않은 모습은 근래엔 보지 못했는데, 오늘의 너는 그저 시선을 벽에 둔 채 앉아만 있다.

 “나 이번에 최종면접 또 떨어졌어.”

 여전히 벽을 보고 있는 네가 툭, 하니 내뱉었다. 너의 눈을 보고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어느 정도 각오했던 말인 만큼 해줄 수 있는 말은 더욱이 없었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말을 네 곁에서 해왔던가를 생각하면…….

 

 본격적인 취업시장에 뛰어든 이래 일이년이 지나자 너는 더 이상 흘릴 눈물도 없다는 듯이 하루하루를 마른 얼굴로 지냈다. 매일을 울던 너는 이제는 이따금 울 뿐이다. 내 앞에서는 더이상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같았다. 너는 네 방 안에서 이불을 덮어쓰고 우는 듯하다. 너의 울음은 소리가 희미해서… 최소한의 소리만이 자신에게 허락된다는 것 마냥 울었다. 나는 너의 희미한 기척이 느껴지면 듣던 음악의 음량을 높이는 것 밖에는 해줄 수 없었다. 가끔은 드르렁드르렁 코골이 소리를 내다가, 가만히 누워서 너의 가냘픈 소리를 듣다가, 창 사이로 희미한 빛이 들어올 때 잠에 들었다.

 

*

 

 우리는 대학교 1학년, 기숙사 룸메이트로 만났다. 처음에 낯을 많이 가리는 나와 달리 너는 쾌활하게 자기소개를 했고, 적극적으로 내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우리 둘 다 과 행사에 참여한다거나, 동기들과 늦게까지 놀거나, 캠퍼스의 설렘을 누리고 다니느라 자주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그래도 너는 시시콜콜한 일로 곧잘 연락을 하곤 했다. 자신이 늦거나 기숙사에 안 들어오는 날엔 미리 연락을 주었고, 무언가 사들고 기숙사에 들어올 땐 꼭 나한테 연락해서 혹시 필요한건 없는지 물어보았다. 처음에 우린 각자의 생활에서 남는 시간을 서로에게 투자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서로를 위해 각자의 시간을 비워두었다. 학기가 끝나갈 때 즈음에 우리는 저녁에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같이 기숙사에서 너의 엄마가 보내준 반찬을 데워 먹거나, 그것이 물리면 배달음식을 몰래 배달시켜 먹었다.

 

 나는 야작을 하는 일이 많아서 기숙사에 조차 못 들어가고 단과대 내 작업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너는 내가 야작 때문에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종종 간식을 사와 놀러왔다. 너는 밤샐 땐 커피가 진리라면서 레쓰비 마일드를 한가득 안고 오고는 했다. 저녁산책 겸 들렀다는 너는 분명 그 레쓰비를 우리의 기숙사 편의점에서 사들고 왔을 것이다. 우리 단과대는 그 흔한 자판기 하나 없었으니까. 또 이 건물은 인문대와 함께 지나치게 학교의 가장 안쪽에 위치했다. 그래서 밤에 보면 문득 오래된 폐교 같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너는 종종 나를 보러오는 게 아니라면 이 곳 근처에 올 일이 없었겠지, 라고 말했다. 네가 주로 가는 경영학과가 있는 건물에서 이 곳은 걸어서 20분은 걸리는 곳이었다.

 그래서 내 동기들도 일학년이 마쳐갈 때쯤엔 너를 모두 다 알게 되었고 종종 밥도 함께 먹었다. 통 자신의 동기들 이야기는 안한다 싶었는데, 네가 주말에 집으로 올라가고 나는 홀로 기숙사에 남게 된 날 우연히 그 동안 유심히 본 적 없던 너의 달력을 보게 되었다. 당장 이번 주말부터 이번 달 말까지 하루하루 차있는 너의 일정들. 칸칸이 채워져 있는 일정과는 달리 내 마음의 한 구석은 왠지 허해진 기분이었다. 곁에 사람을 많이 두지 않는 나의 옆에는 어느새 네가 서 있는 게 당연해졌다. 너는 아니었을지 모르겠지만.

 

 대학생활 내내 너는 정말로 하나의 몸으로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해내는 것인지 남들보다 2배는 바쁘게 살았다. 과 활동, 동아리, 대외활동, 토익점수, 학점까지 너는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살았다. 그 와중에 자신 주변의 사람들도 꼬박 만나고 챙겨가면서. 늘 그런 너를 지켜보자면 대단하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저렇게 시간을 쪼개면서 살아가면서 지치지 않는 너의 강함이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너의 SNS에는 그 날 하루 만난 누군가와 밝게 웃는 너의 사진이 가득했다. 태반은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 네모난 공간 속 네 곁에 있는 나의 사진이 늘어갈수록 그 모르는 사람들과의 사진은 줄어들었다. 처음엔 마냥 아무것도 모르고 기뻐했던 것 같다. 네 안의 어딘가가 구멍이 난 줄은 모르고.

 나는 네가 아니면 동기들과 간혹 밥을 먹고 그 외의 시간에는 그림을 그렸다. 모두가 쓸데없이 넓다고 불평했던 캠퍼스는 내 캔버스 위로 옮겨졌다. 자연대 뒤 나무그늘, 인문대 뒷산의 산책로, 예대 앞 은행나무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 혹은 이야기를 나누는 연인의 모습을 옮기고는 했다. 주로 예대 뒤에 있는 공터에 앉아 그렸다. 주로 휑한 공터를 바라보면서 이름 모를 나무들이 자라나 나를 둘러싸는 상상을 했다. 나의 상상의 끝에서 가끔은 너와 네 동기들, 혹은 선배들일 사람들을 마주쳤다. 너는 대부분의 낮에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 내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한 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 너는 대게 밝은 웃음 혹은 곤혹스런 웃음을 지으며 걸어 지나갔다. 밖에서 보는 네 웃음은 대체로 그 두 종류였다.

 나는 그림을 그리다 틈이 나면 누군가 다른 사람을 만났다. 나의 대학생활을 공간으로 본다면 작은 방 정도는 되었을까. 그 정도로 협소했다. 네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나의 대학생활은 대부분 혼자였겠지. 돌아갈 집이 없는 나에게 너와 함께 살았던 여자기숙사 B동 307호 만이 나의 유일한 집이었다.

 

우리가 신입생일 때, 과에서 전체적으로 실시하는 진로적성검사들 중에 MBTI성격유형검사가 있었다. 내가 먼저 받고, 나중에 너도 받아 우리는 서로의 결과표를 한참이나 들여다봤었다. 너의 MBTI 유형은 사교적인 외교관이었다. ESFJ. 단 하나의 알파벳을 제외하고 나와는 달랐던 너. 너는 그 때 자기가 한 때 외교관을 꿈꾸기도 했었다며 웃어넘겼다. 너에겐 그저 너의 성격을 알려주는 하나의 검사표 일지도 몰랐으나, 나에겐 아니었다. 나는 아직도 종종 그 검사결과를 생각하곤 했다. 사교적인 외교관과 호기심 많은 예술가 사이의 거리감은 어느 정도일까. 너는 이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듯 했다.

 “우리 옛날에 MBTI검사 했던 거 기억나?” 라고 물었을 때,

 “그런 것도 했었나? 그게 뭔데?” 라며 되려 물었던 너였다.

 가끔은, 너와 내가 친해진 것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지구의 한겨울에 사는 여자와 반대편의 한여름에 사는 여자 둘이서 만나버린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했었다. 며칠 전에 네가 어딘가의 상담소에서 받아 들고 온 MBTI검사지가 아니었다면.

 “ISTJ? 청렴결백한 논리주의자 라는데?”

 “너 ESFJ형이었을걸?”

 “내 유형이 그거였다고? 난 기억도 안 나는데. 몇 년 새에 이렇게 바뀔 수도 있는 건가?” 글쎄.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기억하는 내 검사유형이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나도 잘 몰랐다. 그 유형검사는 그저 내가 심심풀이로 가끔 나 자신을 객관적인 지표로 보고 싶을 때 보는 것 일뿐이었고, 너와의 관계에 불안감을 느끼던 때에 그 불안감을 가중시키던 것일 뿐이었다. 그 뿐이었다. 그 뿐이니까 아니 그 뿐이지만 몇 년 새에 네가 그런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엇일까.

 

*

 

 너는 근래 하던 알바를 모두 그만두었다. 면접시간을 피해서 하던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부담이 적다며 선택한 중3 남학생의 과외에 할애하는 시간조차도 아까웠을 것이다. 너의 통장에 월급이라는 것이 들어오지 않은 적은 고1 이후로 처음이었다. 너는 어쩔 수 없이 50만원도 채 모으지 못한 적금통장을 깰 수밖에 없었다. 두 달 만에 다시 찾은 은행에서는, 자주 보았던 은행원이 이제는 “정말로 해지하시겠어요?” 라는 물음도 없이 해지를 도와주었다.

 졸업 후에 너는 이제 평일에 학교를 안가도 되니 알바를 하면서 생활비에 여유를 두고 싶어 했다. 그래서 주중알바와 취업준비를 병행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도 너는 끝내 최종합격이라는 연락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 후엔 투자하는 시간의 차이가 문제일까 하고 알바시간을 줄였다. 하지만 너는 금방 네 자신이 용납할 수 있는 회사의 선의 끝에 다다랐다. 그 이하의 조건이라면 싫었다. 지난 4년간의 네 노력이 전부 무시당하는 느낌이었다. 4년뿐만이 아니었다. 현실을 바라보기 시작했던 고등학생 때부터.

 

 너의 장래희망 기입란을 보며 담임선생님은 네게 “꿈이 회사원이라는 게 말이 되냐 임마.”라고 말하면서 다시 써오라고 했다. 하지만 네 꿈은 정말로 회사원이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자신만의 사무실 책상을 가지고 월요일 아침에는 주간 회의를 하고 어쩌면 좋은 직장 동료와 사랑에 빠져 가정을 꾸릴 가능성도 있는 곳. 결정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곳. 공부는 오래할 것이 못되니 공무원 준비를 할 자신은 없었다. 고등학생인 네가 보기에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을 뉴스에서 볼 때, 그 곳에 있는 너 자신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남는 것은 회사원밖에 없었다.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때 너는 그렇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네게는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너는 무난한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너는 한 번도 경영학과에 진학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 취업준비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취업 후에 조기취업에 실패하게 만든 자소서를 너는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자소서에 스토리텔링을 넣으라고 했다. 너는 취업준비 시즌이 돼서야 스토리텔링이라는 단어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스토리텔링이라니 알게 뭔가. 너는 너의 스토리에 대해 생각해봤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가족에게 한없이 자애로웠던 어머니 아래서 두 동생과 함께 사는 너는 동생들이 태어난 초등학생 때부터 혼자 모든 걸 알아서 했다. 네가 어느 정도 동생들을 집에서 돌볼 수 있을 나이가 되었을 때, 집에 계시던 어머니는 근처 마트에 취직을 하셨다. 너는 모두가 겪는 사춘기마저 희미하게 흘려보냈다. 그 시절에 자신이 왜 동생들을 학교에 보내고, 준비물을 챙기고, 저녁밥을 차려주고, 그 남는 시간에 자신의 숙제를 할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았던 너는 이 모든 게 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너는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꿈으로 삼았다. 꿈이라는 것이 곧 직업인 줄 알았던 때였다. 경영학과에 가고 싶어 하는 또래의 친구들도 자신과 비슷한 대답을 내놓았다. “안정적으로 취직하고 싶어”, “돈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게 현실인걸.”, “하고 싶은 게 없으면 일단 경영학과로 가는 거지 뭐.” 자신은 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런 꿈을 선생님과 같은 누군가는 꿈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아닐 뿐이었다. 너는 어린 두 동생에게 자신의 용돈을 아껴 군것질거리를 사주는 것이 좋았다. 나중에 커서는 군것질거리 말고 더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더 이상 일 하지 않고 살았으면 했다.

 하지만 이 스토리가 결코 자소서에 들어가지 못할 내용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너는 막막했다. 지난 4년간의 활동들은 하나의 스토리가 되기엔 이리 튀고 저리 튀어서 결코 하나의 덩어리로 뭉치기를 거부했다. 그 거부를 받아들이고 나서는 네가 한 활동들에 너 자신을 끼워 맞춰 보았다. 그 맞추기마저 실패하고 나서 너는 네 마음 깊숙한 곳에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의 진짜 꿈은 뭐야?” 라고.

 

*

 

 너와 나는 어제 저녁에 사두었던 쌀을 전부 긁어모아 밥을 지었다. 냉장고에 있는 것 중 먹을만한 건 쌈장과 깻잎 그리고 김치 정도였다. 우리는 깻잎에 밥을 얹고 그 위에 쌈장을 올려 돌돌 말아먹었다. 베이컨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 라고 말하던 너는 내가 만든 베이컨깻잎말이가 먹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없는 반찬 사이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그 허전함을 채웠다.

 

 “마트를 정말 가긴 해야겠다. 그치?”

 “맞아, 생필품도 몇 개 사야하고, 쌀도 이젠 진짜 사야겠어....... 어제 가져온 전단지 보고 살 거 정리해놓자.” 라고 넌 이어 말했다.

 우리는 동네마트의 할인소식을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그런 정보는 네가 어디서 잘 주워듣고 와서 우리는 살림을 공평하게 나눠서 했지만, 장보기만큼은 네 몫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너는 마트 가자는 말을 쉽게 꺼내지 않는다. 우리는 어느 순간 집안 살림과 먹거리의 빈자리를 입으로만 채우고, 최대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실제로 채워놓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우리 이번 달 월... 아니다. 밥 다 먹었어? 오늘 설거지는 내가 할게.”

 네가 웃으며 말했다. 버석하게 말라버린 어딘가의 나뭇잎처럼,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듯이. 네가 이어서 하지 못한 말이 무엇인지 눈치 챘지만 못들은 척 했다.

 

 지금, 너와 나는 소파의 양 끝에 우리 그 누구의 취향도 아닌 동물 다큐멘터리을 틀어놓은 채 앉아있다. 황제펭귄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험난한 북극의 겨울을 나고 있었다. 매서운 눈바람을 묵묵히 감내하고 있는 저 펭귄들……. 하지만 저 안의 펭귄들은 적어도 춥지 않겠지. 그거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일까지 줘야하는 일을 적어도 몇 시부터 시작해야 대강 마무리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시안은 통과되었으니, 크게 수정할 필요가 없을 듯 했다. 물론 이번에 잘해야 다음에도 재계약할 후 있겠지만... 이번 일은 꽤 수입이 쏠쏠했기 때문에 돈이 입금되면, 바로 밀린 월세를 일단 내고... 오랜만에 둘이서 맛있는 걸 사먹으러 나가도 좋을 것 같았다. 사먹기 전에 집을 한 번 청소하기도 나만의 목록에 집어넣었다. 옥탑방이라 그런지 미세먼지가 더 잘 쌓이는 듯 하루라도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집이 먼지구덩이가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휴지나 생리대, 돌돌이 리필이랑 종량제 봉투,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살림들도 몇 가지 사야했다. 그러면 얼마가 남을까. 저번에 깬 적금은 언제 다시 부을 수 있을까. 아, 여기에 전기세랑 수도세, 그리고 핸드폰 요금........속으로 몇 번은 적어놓았던 적금 다시 시작하기, 를 지우자 왠지 가슴이 허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나, 집에 다녀오려고.”

 

 집. 너의 입에서 우리의 집이 아닌 다른 집이 나온 것은 근 이년만인가. 집? 이라고 되묻자 응, 이라고 담담하게 답하는 너를 보니 오래전부터 생각해 오던 건가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저 그래, 라고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너는 단단한 돌덩이 같은 표정으로 “내일 아침에 출발할거니까, 굳이 배웅은 안 해줘도 돼.”라고 말하더니, 어서 남은 작업을 하러 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내가 아직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고 너에게 말한 적이 있던가. 근래 네 앞에서 일 얘기는 하지 않았는데.

 

*

 

 너의 집은 내가 알기론 합천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 어디 있는지도 몰랐고, 지금까지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런 곳이었다. 빨리 다녀오리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네가 연락이 안 된 건 오늘로 일주일째였다. 연락이 잘 안될 수도 있다고 말은 해줬지만, 너와 이토록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고 떨어져 있었던 적은 없었다. 나는 스무 살이 된 이래로 집이란 공간을 잃어버렸고, 너는 네 나름의 목표를 위해 집에 갈 수가 없었다. 합천에 가는 방법을 검색해보다 검색창을 지워버렸다. 그곳에서 너는 돌아올까, 이대로 모든 걸 포기하고 돌아가 버리는 것은 아 닐까. 너는 돌아갈 곳이 있지만, 나는........

 

 이젠 네 곁에서 있지 못할 수도 있는 거겠지.

 

 하루하루의 끝이 너와의 끝을 생각해버리게 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말이 없던 내게 항상 먼저 말을 걸어주었던 너, 내게 레쓰비 한 가득 사와서 불쑥 내밀던 너, 언젠가부터 내 옆을 자연스레 차지해버린 너. 학과 내 질이 좋지 않은 선배들에게 걸려서 고생하던, 대학이란 세상 속에서 작은 섬처럼 존재조차 잊힌 나의 곁에 변하지 않고 있어주었던 너........ 결국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로 살기로 다짐한 날 따라와 준 너. 우리의 집은 그 때부터 기숙사가 아닌 망원동 옥탑방이 되었다. 여름엔 그냥 널부러져 있어도 더웠고, 겨울엔 전기장판 위에 있어도 이가 딱딱-소리를 내는 곳이었다. 그래도 학교라는 작은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오로지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

 집 밖 마루에 앉아 너와 맥주 한 캔을 부딪치며 서로 꾸었던 꿈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림으로 어떻게든 먹고 살고 싶다고 말했던 나와,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과 동생들에게 자랑스런 언니가 되고 싶다고 너는 말했었다. 둘 다 소박하기 이를 데가 없는 꿈이었다. 꿈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것들이었다고 생각했다.

 

*

 

 아마 모든 것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은, 이 소박한 꿈마저 엇갈려버려 둘 중 한 명만 이룰 수 있게 되어버린다면.

 

 막 학기가 끝나갈 때쯤에 우리는 졸업유예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이대로 졸업을 해야 하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졸업유예를 하자니 시간을 버리는 것이 아닐지 싶었고 졸업을 하자니 과 선배들을 보면서 우리가 과연 저 선배들과는 달리 한 번에 취업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특히 너는 취업이 늦어지는 것에 초조해했다. 너는 마지막 학기는 취업계로 학교출석을 메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네 고향엔 아직도 어린 두 동생이 있었고, 부모님의 정년퇴직은 성큼 다가와 있었다. 그 쉬운 일이 아닌 일을 해내야 하는 이유가 네겐 절박했다.

 결국 우리는 어느 것 하나 정해지지 않은 채로 일단 졸업을 했다. 졸업식은 모두가 학사모와 학사복을 입고 주변사람들과 사진을 찍던 날이었다. 너는 이상하게 나와만 그리고 합천에서 올라온 부모님과 동생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는 식당에 가자고 이야기했다. 나는 너의 곁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했으나,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 수많은 사람들은 네 곁에서 어디로 떠나간 것일까. 아니면 네가 그 사람들로부터 걸어 나온 것일까. 짜장면을 먹던 너의 아버지는 취업은 아직이니 라고 물었다. 나는 네 표정을 보고 너의 아버지 입가에 묻은 짜장소스만 보았다. 그 소스가 묻은 입을 닦아드리며 그 입을 막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아직 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 대화를 하던 순간의 정적을 제외한다면 네 가족들은 너처럼 유쾌하고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들이어서 식사시간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너의 가족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너는 어린 두 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너는 오랜만에 신난 듯이 한참을 떠들다가 “아, 미안. 너무 내 이야기만 했네.” 하고 입 꼬리를 슬며시 내리며 말했다.

 

 너의 멋쩍은 미소가 오히려 상처였다는 것을 나는 끝끝내 말하지 못했다. 어떤 꿈을 자주 꾸었다. 네 멋쩍은 미소를 마주한 날도 어김없이 찾아온 꿈. 교회 옆에 붙어있는 작은 집이 있었다. 작은 집 옆에는 ‘희망 보육원’이라는 초라한 나무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교회 마당에는 작은 그네 하나가 있었고, 마을 사람들이 가져다놓은 듯한 화분들이 시든 채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는 마을 사람들을 나와 내 옆의 아이는 구경하고 있었다.

 아이가 신은 구멍 난 양말을 바라보다가 그 구멍을 손으로 집어 틈이 없도록 만들었다. 그 아이는 고맙다는 듯이 웃었다. 웃던 아이는 금세 시름에 잠겼다. 우리는 곧 이 구멍 난 양말조차 그냥 주지 않는 세상으로 나가야만 했다.

 

 어느새 내 곁엔 아무도 없었다.

 

 그 아이마저도. 열아홉, 그 해 겨울의 매서운 눈이 모든 것을 갈라놓았다.

 

 매서운 눈이 나의 앞을 스쳐 지나가자 새로운 풍경이 보였다.

 사람들은 줄을 서 있었다. 나는 맨 마지막에 서 있었는데, 몸을 쭉 내밀어 앞을 보았더니 사람들은 어떤 부저를 누르고 초록색 문과 노란색 문으로 각각 들어갔다. 노란색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더 많아보였는데, 부저를 누르기까지 오래 걸리는 사람도, 주저 없이 누르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점차 지루해져서 그저 줄이 줄어들기만 기다렸다.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있던 나의 귓가로 흐느끼는 듯, 점차 오열로 변해가는 울음이 들려왔다. 울음과 함께 웅성거림도 커져갔다. 부저를 지키던 양복 입은 사람들의 구두소리가 울음과 웅성거림과 함께 뒤섞여 귓가를 어지럽혔다. 나는 꿋꿋이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나의 귓가로 익숙한 너의 소리가 박혀 들어오지 않았다면.

 

 놀란 내가 눈을 뜨자 부저 앞에 주저앉은 여자와 당황한 듯 한 양복 무리의 성난 구둣발이 보였다. 그러고 나서 초록색 문이 쌓은 블록을 내려친 것 마냥 무너져 내렸다. 뒤이어 노란색 문도, 양복 무리도, 주저앉은 여자도. 나의 발밑이 무너져 내렸다.

 

 암전이었다.

 

 *

 

 바람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잘못 산 암막커튼 사이로 환한 대낮의 햇빛이 마구잡이로 들어왔다.

 일주일하고 하루가 지난 오늘. 네가 어떤 결론을 가져온다한들 더 이상 숨죽여 우는 너의 눈물소리를 멈출 수만 있다면 받아들여야한다, 고 마음을 먹은 참이었다. 네 4년 동안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 서울이 미웠다. 옆에서 너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나조차도 그 무관심에 지칠 정도였다면, 너는 더했을 것이다. 무심해서 너무나 추운 서울을 네가 벗어나서 너의 미소를 되찾을 수 있다면. 네가 나를 온갖 무심함과 악의로부터 건져내 나의 삶의 궤도를 찾아주었듯이 나도 네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난 2년 동안 너의 궤도를 빙빙 돌기만 하는 것 정도였다.

 

 우는 너와 무너진 세상이 암흑으로 끝난 꿈을 꾼 또 다른 어느 날, 겨우내 마음을 다잡고 의뢰인의 주문사항이 띄워져 있는 모니터 속 메모를 쳐다보았다. ‘이번에 결혼하는 친구에게 특별한 사진 앨범을 선물하고 싶어서요. 이 사진에 찍힌 저희 모습을 작가님의 따뜻한 일러스트로 받고 싶어요.’ 라는 메시지와 그 옆의 다정한 사진을 나는 번갈아 보았다. 각자의 손들이 꽉 맞잡은 다른 손들로 인해 단단해 보였다. 그 손들을 모아 잡은 그들의 표정이 너무 예뻐서 나는 눈물이 났다. 너의 손, 핸드크림은 미끄러워서 싫다며 항상 건조하던 너의 손과는 다른 손들이어서.

 내가 함부로 네 손을 덥석 잡지 않기 시작한 것은 네가 너의 방에서 홀로 울기 시작한 때부터였다. 나는 거실에서 편하게 하던 작업들을 조용히 방으로 가져가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술에 취해서 들어온 네가 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적이 있었다. 네 얼굴엔 눈물길이 나있었다.

 “왜 나는 일할 수 있다는데, 일하고 싶다는데, 왜, 왜 아무도 날 써주지 않는 거야?”

 너는 도구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널 쓴다고 말하는 세상은 옳지 않다고. 하지만

 “나도 너처럼…….” 라고 이어 말하다 쓰러지듯 잠든 네가 할 뒷말이 무엇이었을지는 모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세상의 도구일지도 모르는 내가 아직 세상의 도구조차도 될 수 없어서 슬퍼하는 너에게 저런 말을 할 자격이나 있는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 날 밤. 바닥에 자고 있는 너를 차마 옮기지는 못하고 보일러 온도를 높이고 내 이불을 덮어주었다. 자고 있는 너의 얼굴을 새하얀 종이에 옮겨 그렸다. 그림 속의 너는 일학년 때의 너처럼 입을 크게 벌려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네 손을 잡고 있는 나를 그렸다. 그 뒤엔 우리의 옥탑을 그렸다. 그림 속의 그들은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어보였다. 너도 그랬으면 했다. 그림 속의 너는 투피스를 입고 목에는 새 사원증이 걸려있었다.

 

 그래도, 그래도.

 일주일하고 하루 전. 너의 입술에 립밤을 한 번 발라줄걸. 너의 손 위에 나의 손이라도 얹어볼걸. 이제는 늦었을까, 너무 늦어 버린 걸까.

 

 이번 작업을 맡겨준 의뢰인은 생각보다 마음에 든 결과물을 받았다며 보너스를 주었다. 그래서 그 동안 사지 못했던 생필품들을 바리바리 양 손에 가득 들고 사온 참이었다. 라면도 신라면은 이제 지겨워 이번에 새로 나왔다던 라면을 사보고, 이제 곧 겨울이니 따뜻한 머플러도 하나 샀다. 너의 것도 하나 같이 샀다. 그렇게 사고 나서 대문 앞에 도착했을 때, 잠시 내가 옥탑방에 살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항상 장을 볼 땐 꼼꼼하고 손이 야무진 너와 함께 갔다는 것도.

 “안 들어가고 뭐해, 여기서?”

 너의 목소리였다. 나의 한 손에서 짐을 빼앗아드는 너의 손과 목소리가 고작 일주일하고 하루였다. 무엇인가 비현실적이었다. 이런 평범한. 그녀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 정말 오랜만이지 않나 싶었다.

 너는 그 와중에 더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으쌰으쌰 하며 올라갔다. 그런 네 손에는 장바구니만한 짐 가방이 들려있었다. 떠나려고 온 것인지, 돌아온 것인지 모르겠어서 발걸음을 미적거리게 되었다. 올라가니 너는 문을 활짝 열고 “나 없는 동안에도 잘살고 있었나보네!” 라고 말하며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짐 가방에서 각종 반찬을 꺼내서 냉장고에 옮겨 넣고 냉장고 안 식자재들의 유통기한을 확인했다. 이건 버리고, 이건 좀 빨리 먹어야겠고, 이건 괜찮고, 하며 분류하던 그녀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정리를 마친 그녀는 내 앞에서 서서 이야기할 것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꺼낸 것은

 

 한 장의 종이였다.

 

*

 

 그 동안 내가 본인 대신에 낸 월세나 공과금을 정리해보았다고 했다. 도저히 아르바이트로는 채울 수 없었던 돈을 내가 메워서 낼 때마다 너는 따로 기록을 해두었다고 했다. 그것을 두고두고 보다가 결국은 안 되겠다고 결심한 것이 최근, 조금이라도 돈을 가져다주어야 할 집에 손을 벌리는 것을 한참 고민하다가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동안 정말 미안하고 고마웠어, 정말.”

 너는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너의 고개가 내려가는 동시에 나의 고개 또한 동시에 내려갔다. 마음이 앞서 급하게 내려간 머리의 정수리가 너의 정수리에 맞닿았다. 맞닿은 정수리를 통해 내 마음이 너에게 가닿았으면 좋겠다, 내게 미안해하지 말아줘, 라고 말하고 싶었다.

 

 네가 한 장의 종이와 함께 꺼내든 것은 한 장의 그림이었다. 지난 날, 술에 취해 들어온 너를 그렸던 그림. 그 날의 현실과는 전혀 다른 나의 희망만이 담긴 그림.

 

 너는 집에 내려가서도 한참을 말을 못 꺼냈다고 했다. 오랜만에 온 큰 딸과 언니 누나의 존재에 가족들은 들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말을 못했다고 했다. 그러다 동생들이 다 잠에 들고, 엄마와 아빠가 거실에 이불을 깔던 너에게 와 서울에서 사는 게 많이 힘드냐고 물었다. 그런 엄마의 손에는 자신이 딸에게 서울 올라가 때 사준 가디건이 들려있었다고 했다.

 “그 가디건은 소매 끝이 헤져있었거든. 딱 봐도 너무 오래, 자주 입었다는 것이 티가 났나 봐.”

 그렇게 말하는 너는 조금은 머쓱한 듯 웃으며 말했다. 부모님이 많이 힘드니, 라고 묻자마자 너는 너의 눈은 조금씩 무거워졌다. 너와 부모님은 그 날 밤에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시종일관 무거웠던 너의 눈을 부모님께서도 무거워진 눈으로 바라보았다. 부모님은 자신들이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겠냐고 타박하셨다. 네 사정을 잘은 모르니까, 네가 말하길 기다렸다고 말했다. 대학 등록금 걱정 안하게 해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네게는 고맙다. 그러니 앞으로 네가 원하는 곳에서 일을 하게 되기 전까지 손을 벌릴 틈은 만들어두셨다고 덧붙이셨다.

 그래서 너는 부모님과도 스무 살이 한참 넘고 나서야 어른 대 어른으로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이 스무 살이 넘은 순간 어른이 되었다고, 아니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너는 그제야 자신이 정말로 힘들었다는 걸 인정했다. 이 정도 힘든 건 우리 사회에선 당연한 일이라고. 자신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힘들다고. 내가 안 되는 건 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결국 자신을 좀먹는 일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머리로는 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했는데 눈앞의 현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었다.

 

 졸업시즌이 되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너의 관계들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누가 교수님추천으로 기업인턴에 갈 수 있을지 서로가 서로를 눈치 보는 나날이었다. 4년을 함께 한 동기들은 동기사랑이 뭐냐, 라는 웃음대신 할 수만 있다면 눈앞의 동기를 보이지 않는 칼로 찌를 것처럼 서로를 대했다. 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교수님 추천이 아니어도 자신이 4년 동안 쌓아온 것들을 믿었다. 그래서 아직은 동기들과 선후배들을 믿었는데, 믿음으로 돌아온 것은 오묘한 적의였다. 그 적의는 정말로 오묘해서, 너는 처음엔 알아채지 못했다. 관계가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것 인줄은 몰랐지. 그걸 스물셋이나 돼서 알았다니, 나도 참 순진했지 라고 너는 생각했다. 너는 그래서 더 보란 듯이 자신과 남들의 꿈을 이루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자꾸만 자신의 목표와 꿈을 조금씩 깎아내릴 수밖에 없었던. 괜찮을 거야. 라고 중얼거렸던 날들이 하루 이틀 늘어갔던.

 그러는 사이 너 자신이 본인의 살을 조금씩 파내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하지만 너를 가장 신경 쓰이고 죄책감이 들게 했던 건 자신의 곁에 언제나 있는 나의 존재였다. 내가 더 이상 학교 안 기숙사에서 살기조차 부담스러울 정도로 과내 소문이 안 좋아졌을 때, 너는 나에게 방학동안 돈을 벌어서 제일 싼 집을 구해 같이 살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겨울 방학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서 겨우 보증금 500만원의 옥탑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대학 생활은 크게 문제가 없었다. 끝이 별로 안 좋기는 했지만. 너는 이 모든 사실을 곧대로 내게 말하지는 않았다. 나에겐 자신보다 더 믿을만한 존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게 말하면 그 누구보다 화내주고 울어줄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너는 내가 자신의 일로 나의 과거를 돌아보지 않기를 바랐다. 이 때 부터였을 것이다. 이 때 간직한 비밀은 취업활동이 생각보다 풀리지 않자 더욱 커져만 갔다. 나는 일러스트 사이트에서 의뢰를 받으면서 차근차근 내 커리어를 쌓아갔는데, 밑천이 없다는 생각에 그림에 절박하게 매달렸다. 네가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오는 아침까지도 내가 안자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어느 날, 내가 돈이 입금되었다면서 신나게 나가 사들고 온 고기를 구워먹던 너는 먹은 그대로 체했다. 너는 “오랜만에 고기를 먹었더니 너무 빨리 먹었나.” 라고 말하며 나를 안심시켰지만, 방으로 돌아와 한참을 울었다. 밤마다 취객들을 상대하는데도 이골이 난 자신과 아침까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나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아르바이트를 전부 다 그만두겠다는 너의 말에도 나는 “그래, 이제 최종면접까지는 매번 가니까 조금만 힘내면 곧 붙을 거야!” 라고 말했다. 그 후로 월세와 자잘한 생활비 대부분을 내가 냈다. 너는 이해할 수 없었다. 너도 물론 나를 좋아하지만, 이 희생이라고 불릴만한 일들이 과연 상대에 대한 애정 그 하나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일까. 너라면 내가 지금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 하더라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에 대한 미안함을 어떻게든 덜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내게 너라는 존재의 의미가 퇴색 되어 버릴까봐 너는 무서웠다.

 한 기업으로부터 온 거절 메일을 보고 나서 너는 충동적으로 3900원짜리 안주를 파는 가게로 들어갔다. 오뎅탕을 시키고 짜디짠 국물을 안주삼아 소주 2병을 내리 마시고 들어왔다. 나의 방문을 열고나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토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방문을 여는 순간 안경을 쓰고 몰두하고 있던 내가 “들어왔어? 오늘 연락 온댔나?” 라고 조심스럽게 묻는 표정을 보는 순간 너의 말은 고스란히 입 속에 들어갔다. 몇 마디를 주고받은 것도 같았다.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다음 날 아침에 나의 방엔 너밖에 없었다. 따가운 것도 같은 아침 햇살이 나의 책상에 드리웠다. 그 책상 위엔 그림이 있었다. 나의 희망이 담겼고, 동시에 너의 희망이 담기기도 한 그림이.

 그 그림을 보고 너는 조용히 한참을 울었다. 내가 이 그림을 그리는 순간을 상상하며 너는 안심도 했고 고마웠고 동시에 미안했다. 투피스를 입고 있는 너는 실제의 너보다 곱게 느껴졌다. 꿈이 있기에 웃고 있을 표정은 생기 있었다. 너는 고등학생 때의 진로희망조사서를 떠올렸다. 회사원. 그저 두 동생들에게 맛있는 것을 맘껏 사주고 싶은 마음에 꾸었던 너만의 꿈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림 속의 집을 지키고, 손을 잡아준 사람의 온기에 보답할 것.

 

*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누운 너는 내가 많이 생각났다고 했다. 자신의 팔을 부여잡은 여동생의 작은 머리통의 정수리 선을 보면서 그림을 그릴 때면 목을 숙이고 집중하던 나의 머리통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내려왔으니 애들도 좀 놀아주고, 푹 쉬다 가라는 가족들의 말을 넌 뿌리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밤이 되면 망원동의 옥탑에 혼자 자고 있을 내가 생각이 났다고 했다. 자기 전엔 항상 음악을 듣는 나, 가끔 이상한 코골이를 하는 나, 거실에 널부러져서 곧잘 자는 나. 그렇게 여전히 여동생의 정수리 선을 따라 나를 떠올리다가 박차고 올라온 것이 오늘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날 저녁에 네가 계산해둔 종이를 같이 들여다보았다. 그러면서 이건 조금 과장이네 마네 내가 정확하네, 아니네 하며 서로 만족스런 돈 계산을 마쳤다.

 

*

 

 네 어머니표 반찬과 함께 밥을 든든히 챙겨먹고, 우린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하필이면 너의 겨울이불을 빨려고 커버를 벗겨놔서 어쩔 수 없이 우린 오랜만에 좁은 거실에 이불을 깔고 몸을 딱 붙여 누웠다. 너는 그 동안 자신도 모르게 담아두고 말아버렸던 이야기들을 하나 둘 웅얼웅얼 들려주었다. 그 웅얼거리는 소리엔 여러 가지 감정들이 담겨 있다가 스쳐 날아갔다. 웅얼거리던 너는 확실히 오는 길이 고단했는지 그새 잠이 들었다.

 나는 그저 네 목소리가, 네 얼굴의 미소가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너를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나의 외로움이 사라지도록 내 곁에 있어준 네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하지만 그런 건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너도 알겠거니 싶기도 했다.

 

 토독-토독-토도독

 

 너의 작은 코골이와 더불어 속삭이듯 밖에선 비가 내리는지 지붕과 바닥으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려왔다. 옛날에 너와 처음으로 간 영화관을 같이 같던 기억이 났다. 세상에서 세 가지를 없애는 조건으로 조금 더 오래 살고자 했던 남자가 나오는 영화였다. 영화 속 그 남자가 무엇을 없앴는지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그 남자의 세상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려준 존재들이 있었다. 그 존재들은 무엇이었을까, 누구였을까.

 내일 아침엔 너와 오늘 남은 국을 데워 밥을 말아먹고 같이 이불빨래를 하면 좋을 듯싶었다. 내일의 날씨는 겨울의 초입치고는 따뜻하다고 했다. 비가 온다는 말은 없었으니 이 비는 잠깐 내리는 여우비이지 싶었다. 너와 함께 이불을 널고 따뜻한 햇볕에 말리면서 흩날리는 이불자락을 볼 수 있겠지. 그걸 바라보면서 오랜만에 평상에 앉아 맥주 한 캔을 마시는 건 어떨까. 토독, 비가 내리는 오늘 밤. 너에게 하고픈 말이 가득 쌓인 빨래바구니 마냥 볼록하게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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