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순천향 창작문예 공모전 소설 부문 당선작 「휴대용 꼰대」
제27회 순천향 창작문예 공모전 소설 부문 당선작 「휴대용 꼰대」
  • 연우진(미디어콘텐츠, 15)
  • 승인 2021.02.16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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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화야, 아버지 돌아가셨다."

 

수화기 너머로 아버지의 부고를 알리는 엄마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했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다는 듯, 그저 올 것이 왔다는 듯 차분하고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대학 입학 통지를 받았을 때부터 이미 아버지의 몸 상태는 간암 말기로 회복 불가라는 진단을 받은 지 오래였다. 지금이 벌써 2학기가 끝나갈 시기이니 아버지는 병상에서 1년 가까이 되는 긴 시간을 버틴 셈이었다.

 

'운동만 했던 놈이 무슨 글이야!'

 

지금도 아버지에 대해서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었다. 초중고 12년을 해왔던 검도를 때려치우고, 각본을 쓰는 일을 하고 싶다며 장남인 내가 문예과를 가겠다고 아버지께 처음 말했을 때, 아버지에게 날아온 것은 덕담이 아니라 베개였다. 사실, 이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 것이 그 날아오는 베개를 맞은 이후로 그 후로는 와 일절 대화를 나눴던 적이 없었다. 그날 들었던 생각은 겨울에 물어보길 잘했다는 것뿐이었다. 여름에는 항상 목침을 베고 누우셨으니까. 아버지는 그 이후로 시종일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고,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에도 돈 한 푼 제대로 지원해줄 수 없으면서도 너 같은 놈을 위해 써줄 돈 따위는 없다며 소리를 치기도 하셨다. 이미 간암으로 인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아버지의 쥐어짠 목소리에서 나오는 호통에는 엄격함도, 근엄함도, 하다못해 두려움마저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죽을 날을 앞둔 늙은 개가 짖어대는 불쾌함만 남아 있을 뿐. 그런 생각이 들게 되니 이제는 아버지의 얼굴을 볼 마음도, 아버지의 말을 들을 용기도 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누군가에게 말하려 하지는 않았다. 그냥 주변에는 살짝 사이가 틀어졌을 뿐이라며 둘러대고는 했지만, 사실, 관계의 틀어짐 이상으로 나의 가치를 부정적으로 말하며 이제는 누구도 쳐다보지 않을 권위를 들먹이는 그런 아버지에 대한 혐오감을 참을 수 없던 것이었다. 집에 있는 다른 가족들도 어느 정도 내 생각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일까, 집을 나오고 싶다는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집안의 형편을 알고 있었기에 학비 지원은커녕 돈 한 푼 없이 그대로 도망가듯 집을 나왔다. 학교가 개강하기 전부터 그 근처에 모아둔 돈으로 자취방을 잡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다.

 

"장례식은… 올 거지? 사향이랑 엄마 혼자서는 조금 힘들어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보다 장례식에 올 건지를 묻는 말이 더 떨리게 느껴졌다. 마치 제안해서는 안 될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갈게요..., 내일 집으로 갈게요."

 

굳이 집에 있는 다른 가족들의 마음까지 불편하게 할 필요는 없었기에 서둘러 가겠다고 대답했다. 아무래도 엄마는 집에 있는 동안 내가 아버지에게 느꼈던 그 추악하고 더러운 감정을 약간은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좀처럼 그날 밤은 쉽게 잠들 수 없었다.

 

다음날,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걸까. 열차 시간이 아슬아슬한 시간에 눈이 떠졌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밖에서 알바를 하다 지쳐 잠이 들어도 다음 날 새벽이면 저절로 눈이 떠졌었던 것을 생각하면, 아닌 척하더라도 이제는 아버지가 없다라는 것이 정신을 흔들고 있기는 했던 것 같다. 집에 오래 있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짐 같은 건 싸두지도 않았고, 서둘러 겉옷만 입은 채 현관문으로 뛰쳐나가려던 순간, 강렬한 진동이 겉옷 주머니에서 상반신 전체에 퍼져나갔다. 갑작스러운 울림에 놀라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마스크」

 

겨우 그 세글자밖에 안 되는 한 단어에 진동을 느꼈던 부위에서부터 소름이 끼쳐 올라왔다. 아직 현관문도 안 열고 있는 지금, 이 작디작은 단칸방에서 내가 마스크도 안 쓴 채 밖을 나오려했다는 것을 누군가가 내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이 방안이 스릴러 영화의 장면과 같이 느껴지겠지만, 내가 느끼는 소름은 그런 스릴러 영화의 느낌이 아니었다. 그것을 뛰어넘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고, 존재할 수 없는 것을 느끼게 되었을 때의 느껴지는 압도적인 공포감. 그 문자는 절대로 올 수 없는 사람에게서 온 문자였기 때문이다. 문자를 보낸 사람의 이름이 저장된 칸에는 정확히 '아버지'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번호 역시 내가 아는 번호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이 문자는 틀림없는 아버지의 휴대폰으로 온 문자였다.

 

"사향이 자식이 이상한 장난치는 건가?"

 

공포를 잊기 위해 나의 두뇌는 어리석은 방향으로 회전을 하기 시작했다. 이 장난을 집에 있는 여동생의 장난으로 확정지어버린 것이다. 조금만 제대로 생각해봐도 그런 일이 쉽게 가능할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공포를 잊기 위해 내 두뇌는 더더욱 어리석은 방향으로 지금의 현상을 해석하려 했다. 집을 찾기 싫었던 나의 마음은 그 문자 하나로 서둘러 집으로 가 최사향 이 녀석을 한 대 쥐어박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서둘러 이적하기 시작했다. 휴대폰을 닫자마자 집을 도망쳐 나오듯 역으로 달려갔다.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야?"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사향에게 문자를 보여주며 범인으로 지목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마치 추리 소설의 엉터리 형사들을 보고 한탄해 하는 탐정같은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차는 여동생의 반응이었다. 그리고 그 반응을 보고 난 후에야 내가 집으로 오면서 얼마나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네가 아버지 휴대폰으로 장난친 거 아니었어?"

"내가 그걸 해서 얻는 게 뭐 있다고 그런 장난을 쳐? 그리고 아빠 입원한 후로 휴대폰 쓴 적도 없어."

 

아버지의 문자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휴대폰은 병원에 입원한 후로 거의 쓴 적이 없어 집안에 방치되다시피 했다는 사실이었다. 엄마도 아버지의 휴대폰을 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처음에 두 사람에게도 문자를 보여줬을 때는 놀라는 것 같았지만, 내가 처음 이 문자를 받았을 때의 표정에 비하면, 가벼운 수준이었다.

 

"그냥 옛날에 문자 예약같은 거라도 해놓은 거 아니겠니?"

 

문자를 예약하는 기능이 작동한 게 아니냐는 엄마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지만, 상황이 너무나 절묘히 맞아 떨어졌기에 신빙성이 떨어지는 데다가, 그건 아버지의 휴대폰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정작 그 아버지의 휴대폰이 어디로 갔는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전화는 해봤어요?"

"처음에 없어졌을 때는 해봤지. 그런데 안 울리더라고. 그게 벌써 몇 달 전이었으니 이젠 배터리가 없지 않을까?"

"누가 훔쳐 간 건 아니고?"

"글쎄… 딱히 명세서 날아온 것도 없었는데."

 

돈 내라는 이야기가 안 왔다는 걸 봐서는 절도로 인해 없어진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경찰서에 누가 분실품을 신고한 것도 아니니 일단은 집에서 없어진 것은 맞는 것 같았다.

 

"아빠가 천국에서 보낸 문자 아니야?"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결국,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무엇 하나 제대로 해결된 것 없이 자취방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상주인 내가 정작 아버지의 문자 때문에 아버지의 장례식에 집중을 못하고 있었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엄마는 크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고 말했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지만, 너무나도 찝찝한 기분을 풀 수가 없었다. 의도치않게 며칠간 집을 급하게 비웠던 터라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내가 느낀 나의 방의 감상은 '더럽다'였다. 며칠째 정돈되지 않은 이불과 옷가지가 구석에 파묻혀 그 우중충하고 눅눅한 냄새를 풍겨오고 있고, 햇살이 비치는 창 아래로는 조금만 숨소리를 내도 자리에 있던 먼지들이 눈보라처럼 휘어 올라올 것만 같았다. 호기심에 한 번 후 하고 숨을 내쉬자 방안의 먼지들이 한순간에 날아올라 콧속으로 들어왔다. 결말은 알았지만, 감당은 할 수 없었기에 결국 먼지에 콧물을 내뿜으며 재채기가 나왔다. 그때였다. 또다시, 휴대폰 진동이 강하게 울렸다.

 

「치우고 좀 살아라」

 

역시 누군가가 지금 나를 보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이번에도 아버지의 번호로 날아온 문자였다. 두 번째로 온 문자에 든 감정은 이제 공포가 아니라 분노였다. 유일하게 밖을 볼 수 있는 창을 열고 밖을 내려다봤다. 이곳을 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잽싸게 튄 건지 아닌 척을 하고 있는지, 창에서는 그 표정까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진짜 잡히면 죽는다, 이 새끼."

 

하지만, 이건 이제 시작이었다. 그 후에도 그 악질적인 문자들은 잊어버릴 때쯤이면 찾아와 짧고 강렬한 잔소리 한 마디를 남기고 가고는 했다. 마치 자신이 진짜 아버지라도 된다는 마냥 근엄하게 보내는 그 한마디는 묘하게 내 신경을 긁어댔고, 나의 행동이 자신의 손바닥 안이라는 걸 알려주듯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내가 하는 작은 실수들을 지적하고는 했다. 학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듣고 있는 교양 과목에서 잠시 하품이 나오고 있을 때면,

 

「그렇게 졸고 있을 거면 학교를 왜 갔냐」

 

바로 핀잔하는 문자가 날아오는가 하면, 급하게 메모할 일이 있어 평소에는 잘 쓰지도 않는 포스트잇같은 메모지를 찾고 있을 때면,

 

「물건 하나도 제자리에 안 두냐」

 

귀신같이 잔소리를 날려왔다. 램프를 비비면 나오는 요정처럼 나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옆에서 그럴 줄 알았다는 얄미운 말투. 그중에서도 압권이었던 것은

 

「글씨도 개판이네」

 

이제는 사사건건 글씨마저도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보통의 잔소리였다면, 대상을 향한 애정에서 비롯된 쓴소리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삭막하기 짝이 없는 기본 폰트의 깔보는듯한 짧은 한마디는 정이라는 걸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런 면까지 정말로 우리 아버지의 화법과 닮아있었기 때문에, 그 분노는 배가 되었다. 가끔씩 너무 화가 나 아버지의 번호로 전화를 걸면,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기계 음성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가끔은 정말로 아버지가 보내는 문자인가라는 멍청한 생각을 할 때도 있었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아버지는 살아계셨을 때조차 제대로 문자 한번 보낸 적 없었던 사람이었기에 천국에서 문자를 보낼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런 짓을 할 리 없었다. 이건 그저 누군가의 악질적인 장난이며 그렇게 믿어야만, 내 능력 범위 안에서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만 주변에 범인이 있을 것이라는 내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신경은 더욱 곤두서졌고, 주변에 대한 시선도 날카롭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작은 소리에도 민감해지고,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으니 그 피로는 다른 곳에서의 실수로 이어졌다.

 

"최적화, 너 요새 상태 왜 이래? 너 일에 불만 있어?"

 

알바하는 카페에서 반쯤 간긴 눈으로 설거지를 하다 세 번째 접시가 깨질뻔했던 것을 점장이 냉큼 손을 뻗어 붙잡았다.

 

"죄송합니다, 좀 개인적인 일 때문에 잠을 설치다 보니...."

"밤새 어디서 게임이나 주식같은 거나 보고 있는 건 아니고?"

"아뇨, 가정…문제? 디지털…문제? 그런 걸로 좀 고민이 있어가지고...."

 

사건을 직접 겪고 있는 나조차도 이걸 무슨 문제라고 해야 될지 감이 오질 않았다. 어떤 방식으로 설명을 할지 몰라 횡설수설하고 있으니 점장 눈에는 그냥 잠이 모자라 헛소리를 하는 녀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알았으니까, 오늘은 빨리 들어가. 오늘 마무리는 내가 할 테니까. 들어가서 바로 누워, 알았지?"

 

점장의 아량으로 그날은 좀 더 빨리 퇴근할 수 있었다. 점장은 들어가자마자 바로 누워 잠이나 자라고 했지만, 시뻘개진 눈으로 또 새벽 내내 잠을 설칠 것 같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휴대폰을 꺼놓거나 다른 곳에 두고 오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일시적인 방편일 뿐,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았다. 문자가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잠을 설치는 이유는 이 기묘한 일들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다는 것이었으니까.

 

"저번에 다 못 썼던 글이나 마저 써야겠다."

 

편의점에서 간단히 끼니를 채울만한 것들을 사서 방으로 올라갔다. 어차피 잠이 제대로 들 수 없다면, 밀렸던 글들이나 쓰고 지쳐 잠이 들겠다는 심산이었다. 방 불도 안 켠 채로 그대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귀신같이 바로 휴대폰에 문자를 알리는 진동이 울렸다. 이제는 누군지조차 당연히 알겠다는 듯 휴대폰을 들어 문자를 확인했다.

 

「눈 나빠진다」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생각으로 전등을 키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지금부터 집중을 하는 시간을 가질 테니 더 이상 이 가증스러운 휴대폰이 어떤 문자를 보여준다 하더라도 휘둘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으로 지금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도 집중에 좋은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다른 곳에 눈길을 주지 않고, 오로지 화면에만 신경을 쏟고 차분히 글을 써내려 갔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지금 학과를 지원했는데도, 정작 수업은 온라인으로만 대체되고 있었고, 수업보다는 과제가 대부분이었기에 내가 쓰고 싶은 글보다는 학점을 위한 작문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하고 싶었던 건 언제나 거의 뒷전으로 밀려져 있었다. 설마 그 문자가 다시금 글을 쓰기 위한 원동력이 될 줄은 몰랐다. 두 달 전 열렸던 웹소설 공모전에 출품하려 했던 작품이었지만, 결국 기한을 맞추지 못하고 포기했었다. 이젠 다른 곳에 출품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언젠가 마무리는 지어야겠다는 마음만 갖고 있었다. 오랜만에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고 있으니 차츰 기분도 가라앉았다. 차츰 한 에피소드를 정리할 때쯤 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어느정도 기분이 가라앉았던 터라 이제는 문자를 봐도 어느 정도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날아온 문자의 내용을 봤을 때, 나는 정말로 진지하게 그 문자의 존재에 대해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운동만 했던 놈이 무슨 글이야」

 

아버지와의 대화를 멈추기로 마음 먹은 날,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들었던 말이 정확하게 한 글자, 한 글자 액정 속에 박혀있었다. 두 번 다시 아버지와는 말을 섞지 않기로 했다고 결심하게 한 그 말이 아버지의 문자로 내게 다시 왔을 때, 정말로 사향이가 했던 말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빠가 천국에서 보낸 문자 아니야?'

 

그 바보같은 한 마디를 지금 내가 진심으로 믿으려 할 줄은 몰랐다. 차마 비슷하게라도 이런 문자를 보내기 위해선 나에 대해서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기에 문자를 처음 받았을 때만큼의 공포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정말로 이게 아버지의 문자가 맞다면, 이 문자는 대체 어디서 오고 있는 걸까. 두려움만큼 궁금증도 함께 커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나는 이 문자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에요?」

 

처음으로 그 번호로 답장을 보냈다. 진작에 이렇게 했어야 했다. 천국에서 보낸 문자라는 정신나간 생각이라도, 적어도 이 메시지를 정면으로 받는 동안은 속는 셈 치고 믿어보기로 했다. 그래야 이 상황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이리저리 휘둘린 탄산음료의 뚜껑은 이제 열렸을 뿐, 처음이 어려웠지 두 번째부터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왜 이제 와서 내 하는 일에 간섭하냐구요.」

 

두 번째 메시지를 보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휴대폰이 울렸다.

 

「잘되라고 하는 소리를 간섭으로 듣냐?」

 

다음에 이어진 문자는 내가 보낸 말에 대한 답장이었다. 일방적으로 날아왔던 과거의 문자들에 비하면, 이제야 제대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답변을 받으면 받을수록 정말 그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을 것만 같아서 덩달아 두려워지기도 했다. 날아오는 말조차도 점점 더 아버지의 말투와 비슷해져 갔다.

 

「누가 언제 간섭해달라고 했어요? 다 죽어서 이제 와서 뒷북이야」

「너 지금 뭐라고 쳤어, 어?」

「살아생전에도 제대로 된 문자 하나 보낸 적 없었으면서」

「그러니까 누가 검도 접고 글 쓰래?」

「내가 하고 싶다는 것도 못하냐고!」

「글로 상 한 번 못 받았던 게 갑자기 왜!」

「내가 쓴 글 제대로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어요?」

「보나 마나 옛날 초등학교 그림일기 수준이겠지」

 

처음에 투박하던 그 문자들은 마치 감정이라도 가진 듯 나와 대화를 하면서 점점 더 격해지기 시작했다. 이 문자의 주인이 진짜 우리 아버지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런 소리 없이 글자로만 이어지고 있는 이 자그마한 전쟁은 어렸을 때부터 치고 박고 싸우던 그 아버지와의 싸움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그 병들어 쓸쓸히 죽어가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닌, 무엇이 덤벼도 끄떡하지 않을 것 같고, 내가 아무리 덤벼도 무너지지 않을 것같던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나려 했다. 감정은 점점 격해지고 있지만, 그 반대로 마음에 있던 응어리는 내려가고 있었다. 어쩌면 마음 한구석에서부터 조금이나마 바라고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 다시 한번 서로 속마음을 다 털어내면서 싸우고 싶다며 말이다.

 

「고집불통」

 

한참을 입씨름이 아닌 글씨름을 한 후 돌아온 반응이었다.

 

「도긴개긴」

 

이에 질세라 바로 답장을 보내주었다. 본인이 먼저 쏘아 올린 작은 공이었다. 곧장 바로 다음 답변이 도착했다.

 

「그래도 후련」

 

처음으로 잔소리나 비난이 아닌 자신의 기분을 담은 메시지가 왔다. 멍청하고 바보같은 착각이라고 말했던 이전에 나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고,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지금의 대화 상대를 아버지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후련이라는 그 짧은 한마디에는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미련들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나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하려 메시지를 보내려 할 때, 순간 문자 창이 닫히고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가 온 것이었다. 그 아버지의 번호로. 아버지라 생각하고 신나게 글로 떠들어댈 때는 언제고 전화벨이 울리자 갑자기 손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의 전화라서가 아닌, 이 통화를 눌렀을 때 내가 아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릴까 봐 두려운 것이었다. 반대쪽 손으로 통화 버튼을 밀려고 하는 순간, 전화가 손도 대지 않고 저절로 연결되었다. 하물며 먼저 끊어질세라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전화를 감싸 안고 왼쪽 귀로 가져다 댔다. 혹여 자그마한 목소리라도 놓칠세라 온 신경을 액정 너머로 집중했다. 그동안 몇 번을 걸어도 반응이 없었던 그 전화가 처음으로 내게 먼저 말을 걸었으니.

 

"너 하고 싶은데로 살아라."

 

전화는 내게 답변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끊어졌다. 다시 걸 수도 다시 받을 수도 없는 마지막 한마디를 무책임하게 툭 던지고 그 전화는 무심히 끊어졌다. 약간 가래가 낀 듯한 걸쭉하고 제멋대로인 말투,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건강했었던 아버지의 목소리, 휴대폰 너머로 들린 목소리는 틀림없는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무슨 조화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들었던 생각은 그저 전화를 건 곳에서는 그나마 멀쩡한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버지의 번호로 왔던 문자와 전화 기록들은 모두 지워져 있었다. 살아계셨을 때의 기록을 제외하면, 문자 내용 하나, 전화 통화 하나 남겨져 있지 않았다. 무슨 경험을 한 건지 비몽사몽하고 있었을 때, 집에 있는 사향이에게 톡이 왔다.

 

「청소하다 침대 밑에서 아빠 폰 발견, 아직도 배터리가 남아 있었음, 대박.」

 

종강 주에 다시금 집을 찾았다. 아버지의 번호로 온 그 기묘한 전화가 있던 후로는 다시는 그 번호로 문자나 전화가 오는 일은 없었다. 사향이가 찾았다는 아버지의 휴대폰에도 문자나 전화를 한 기록들은 전혀 없었다. 내 일상은 다시 놀랄 만큼 조용해졌고,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정말 있었던 일이 아니라는 것처럼. 가족들도 집을 나오기 전보다 표정이 밝아진 것 같다고 했다. 우리 집도 아버지의 사진과 휴대폰이 책장에 놓인 것 말고는 특별히 변한 것은 없는 것 같았다.

 

"실물보다 사진이 낫네."

 

이젠 아버지의 얼굴을 봐도 시답잖은 농담이 나올 수 있었다. 비록 사진이기는 하나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하고도 표정이 일그러지지않는 내 모습을 보고 엄마와 사향이도 살짝 놀란 것 같았다.

 

"뭐하는 거야?"

 

아버지의 사진을 보고 휴대폰을 꺼내 들자 사향이 물었다.

 

"그냥, 서투른 솜씨로 문자 보내느라 고생 많았다고 전해주려고."

"뭔 소리야?"

 

얼마 후, 아버지의 휴대폰 상단엔 문자가 왔음을 전하는 알림메시지가 올라왔다.

 

「거기서 잘 지켜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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