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두 얼굴...실명제 도입해야 하나
익명의 두 얼굴...실명제 도입해야 하나
  • 전혜련
  • 승인 2020.01.03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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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14일, 유난히 미소가 빛났던 한 20대 청춘이 세상을 등졌다. 그의 죽음으로 대중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11월 24일,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는 바로 가수 故설리(본명 최진리)와 故구하라의 이야기다. 경찰은 이들이 외력이나 타살혐의점이 없고 유족들과 지인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종결했다. 한창 꽃을 피울 나이에 세상을 일찍 저버린 이들의 소식에 대중들은 슬퍼하고, 위로하고, 명복을 빌고 있다.

  이와 동시에 평소 두 사람을 괴롭히던 악성댓글(악플)문제가 수면 위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이름이나 얼굴을 밝히지 않아도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온라인 환경 특성상, 그 익명성을 방패 삼아 특정인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악플을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연예인 등 유명인의 개인SNS에서 글을 퍼와 자극적이고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만한 제목과 내용을 작성하여 기사를 쓰는 언론의 행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아직 상당수의 포털 사이트들은 기사마다 댓글을 익명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기 때문에, 악플을 유도하는 일종의 기폭제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악플은 그 자체로도 어떤 이에게 큰 상처가 되지만, 설리와 구하라처럼 유명인들이 이를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할 시 베르테르 효과가 나타나 더 큰 피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베르테르 효과란 유명인 또는 평소 존경하거나 선망하던 인물이 자살할 경우, 그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악플 문제가 심각하게 우려되는 가운데, 대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커뮤니티 앱인 <에브리타임>, 직장인들이 애용하는 <블라인드>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이 중<에브리타임>은 전국 약 400개의 캠퍼스 재학생들이 가장 활발하게 이용하는 대학생 커뮤니티 앱으로, 학생들이 직접 게시판을 개설하여 학식 메뉴, 버스 시간표, 동아리 홍보 등 각종 정보를 교류하고 재학생들끼리 편리하게 소통할 수 있다. 앱 특성상 처음 가입을 할 때 실명이 아닌 닉네임을 사용하고, 이마저도 익명버튼을 눌러 숨길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이 커뮤니티에 올라오고 있는 글의 대부분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익명으로 작성이 된다. 물론 이러한 익명성은 좀 더 자유롭고 적극적인 의견교환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익명성에 따른 문제점도 분명하게 보인다. 앱을 조금만 살펴보다 보면,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욕하는 눈살이 찌푸려지는 글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의견이 충돌하면서 내뱉는 단순 욕설부터, 혐오 표현, 그리고 특정학과를 집어서 비난을 하는 글도 종종 보였다. 익명성이 악플의 모든 근원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과연 이름을 걸고도 이러한 글들을 커뮤니티에 남길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대목이었다.

  익명성을 이대로 두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인터넷 실명제 도입관련 게시글의 청원 인원수 합계는 1221일 기준 약 20,000명을 넘고 있다. 또한 우리 대학 학생들도 커뮤니티의 익명성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실명제를 도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116일 날 작성된 한 게시글에는 앱에 실명이나 닉네임이 보이도록 했으면 좋겠다라는 취지의 글이 올라왔다. <에브리타임>을 종종 본다는 홍상혁(디스플레이신소재공학, 16) 학생은 온라인상 실명을 사용하면 익명보다 댓글이 많이 달리지 않을 것이고, 소통이 좀 더 소극적이게 되어 많은 정보를 얻지 못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익명성 때문에 보기 좋지 못한 댓글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실명을 사용하면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되고 책임감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실명제를 찬성했다.

출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주장하는 청원 글이 올라오고 있다.
출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주장하는 청원 글이 올라오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211항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의 인터넷 실명제 조항이 2012년 헌법재판소에서 자신의 사상이나 견해를 표명하고 전파할 익명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며 위헌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헌재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상의 익명성에 대한 네티즌들의 의견은 사뭇 다르다. 설문조사기관 두잇서베이가 지난 1022일부터 25일까지 성인남녀 3,16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댓글 작성자의 아이디와 IP를 공개하는 인터넷 준실명제 도입에 대하여 전체 응답자 중 76%, 댓글 작성자의 실명을 전부 공개하는 인터넷 실명제 도입에는 71%가 찬성으로 응답했다. 이는 익명성이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넘어서 악의성까지 뒤따른다는 의견이다.

  현재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는 위헌 판결이 난 실명제를 대신해 여러 제도적 보완을 하는 추세이다. 악플이 자주 달리는 특정 분야 기사의 댓글창을 폐지하거나,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악성댓글 필터링 기술 도입이 그 예이다. 또한 국회에서도 법적 보완을 위해 노력 중이다. 박대출 의원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발의하였다. 이 개정안은 아이디 전체와 IP를 함께 공개해 실명제에 준하는 책임감을 높이는 데에 중점을 둔 것이다. 박선숙 의원 역시 같은 법률의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피해를 본 이용자가 요청할 경우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혐오 표현 등을 삭제할 수 있는 의무를 부과하도록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악플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해 각자 스스로 생각해보고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더 이상 익명이라는 벽 뒤에 숨기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