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물', 게임에서 새로운 진입 유저를 망설이게 하는 실력자들을 일컫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근래에는 ‘나갈 사람’, ‘나가야 할 사람’ 등으로 통용되는 것 같습니다. 네, 맞습니다. 저는 고인 물입니다. 학보사에는 2년을 있었고 이제는 떠날 시간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학보사 고인 물이 앞으로 더 싱싱하게 흘러가야 할 후배님들께 전하는 이야기.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만, 학보사에서 ‘책임’만큼 강조되는 일은 없습니다. ‘학보사에 모든 것을 헌신하고 내 것처럼,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말고 책임지세요‘라는 말은 할 생각 없습니다. 대학 언론기관은 특수한 기관입니다. 당신을 온전히 기자로 알아주는 사람은 몇 없습니다. 학업과 병행해야 한다는 이 상황은 여러 번 당신의 발목을 잡을 겁니다. 학보사가 최우선이 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에게는 학점도, 동아리도, 기타 활동들도 중요할 테니까요. 학보사를 책임지지 마십시오. 당신 기사 하나만 책임지세요. 자신이 취재해야 할 항목을 분명히 하고 하나씩 헤쳐나가세요. 취재는 때로 꼬이기 마련이라 계획 따라 되지 않겠지만 하나씩 천천히 하다보면 멋진 기사 하나가 학보사에 새겨질 겁니다.
용기가 필요합니다. 교수나 교직원을 만나는 일부터 학우들을 만나는 일까지 쉬운 일이 없습니다. 아무리 작문 능력이 뛰어나도 사람 만나는 일을 두려워한다면 기사를 쓸 수 없습니다. 기사는 글짓기가 아니라 취재한 사실을 전달하는 일이니까요. 부모님과 같은 연배인 교수, 교직원께 자료를 요구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부터, 축제 때 학우들에게 축제가 어떤지 물어보는 것에 이르기까지 선뜻 나서기 쉬운 일이 없습니다. 지인을 인터뷰하는 편법을 쓰기도 하지만 불편함을 딛고 얻어내는 데이터야말로 당신과 학보사에 큰 도움을 가져다 줄 것임을 잊지 마세요. 한 가지 더, ‘발칙할 용기’를 가지세요.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글이 있습니다. 주저하지 말고 도전하세요.
생각하는 방법을 꾸준히 연습하세요. 같은 사건을 보더라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접근법이 달라질 수 있고 더 날카로운, 더 창의적인 기사가 나올 수 있습니다. 당신이 쓴 기사가 어떤 후폭풍을 가져올지 지레 겁먹지 마세요. 주간교수와 편집국장과 대화하고 자신의 의지를 내비치고 의논하세요. 회의를 하고 의논을 할 때는 당신이 어떤 자리에 있건 자신의 의견을 생각하고 끊임없이 질문하세요. 누가 하는 결정이든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설령 편집국장이 하는 말일지라도 질문하고 토론하세요. 학보사를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학보사 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세 가지를 강조했지만 결코 학보사에만 국한되는 사안은 아닙니다. 발표, 과제, 공부, 연애, 동아리, 학생자치단체, 대외활동 등등 학교생활에서 말 한마디부터 큰 활동까지 생각하고 용기내고 책임져야 합니다.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세 가지 사안은 ‘현실’이 될 테죠. 더 많이 생각하고 용기내고 책임지세요.
이상 고인 물의 후회였습니다. 지난 2년간 학보사 활동을 하면서, 아니 4년간 학교생활을 하며 느낀 후회를 담아보았습니다. 남아있을 당신들은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보고 있는, 여전히 흐를 수 있는 당신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