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라는 남자
'꼰대'라는 남자
  • 이건혁
  • 승인 2019.03.0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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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야말로 꼰대다. 본인 말고는 다 바보, 멍청이로 깎아내리고 요즘 세상은 이상하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의 인생은 마치 시계 같다. 동네 순찰, 출근, 부인 묘지에 헌화 등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정,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욕을 퍼붓는다. 꽃 두 다발에 70크로나 할인 행사를 했더니 한 다발에 35크로나로 팔지 않는다며 매장에서 소리를 지른다.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오베라는 남자>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50대 후반의 나이, 세월이 빗겨간 머리는 벗겨지고 배는 튀어나온 노인이다.

  그는 자살하려 한다. 그가 사랑한 아내 소냐가 떠났고, 얼마 전 43년간 근무한 회사로부터 해고통보를 받았다. 첫번째 시도, 천장에 줄을 매달았다. 짙푸른 색의 정장을 차려 입고 아내의 사진을 창밖으로 향하게 한다. 그 얇은 줄에 몸을 맡긴 순간, 창 너머로 그의 정원에 차량이 돌진한다. 마을 내 차량접근금지 원칙을 만든 장본인으로서 오베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패다. 이후 수차례 시도가 모두, 이웃의 방해로 실패했다. 죽는 게 사는 것보다 어려워, 아내의 무덤 앞에서 중얼거린다.

  인생이 안정을 찾을 때쯤이면 세상은 언제나 그의 가장 소중한 것을 앗아갔다. 세상이 앗아갈 때마다 그는 자신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고자 더욱 강하게 원칙, 소신으로 울타리 쳤다. 그렇게 그는 꼰대가 되어갔다. 정해진 규칙을, 원칙을 지키는 것이 소중한 것을 지키는 방법이고, 그래서 삶의 이유가 되었다.

  5번째 자살시도, 그는 기찻길에 뛰어내리려 한다. 그 순간, 옆에 있던 남자가 심장을 부여잡더니 선로로 떨어진다. 주변사람들은 그저, 방관하거나 핸드폰으로 촬영한다. 그 누구도, 어떤 사람들도 선뜻 나서지 않는다. 결국 먼저 뛰어내려 사람을 끌어올리며 플랫폼에 있는 사람에게 소리친다.

  ”이 멍청한 것들, 구경만 하고 있을거야?!”

  모든 세상이 이상하게만 보인다. 차량진입금지라는 팻말이 있는 곳에 아무렇지 않게 차를 타고 들어오고, 선로에 쓰러진 사람을 촬영하는 세상이, 그에게는 이상하기만 하다.

  그의 인생은 마치 시계 같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스케줄을 이행하는 것도, 2시에 왜 시계바늘이 2시에 향하지 않냐고 말하는 것도. 그는 꼰대다, 아니 어른이다. 세상에 필요한 어른이다. 사회 공감력이 떨어져가고, 개인이기주의가,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지는 세상에서 원칙을 고수하고 위반하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그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어른의 탈을 쓴 꼰대들과는 정반대의 향기를 풍긴다.

  그리고 우리도, 꼰대가 아닌 어른이 되기 위해 다분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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